지난주의 비소식은 여러모로 반가운 손님이었습니다.
강릉에는 단비같은 비여서 해갈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리에게는 제대로의 가을 기운을 주고 있습니다. 너무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너무 더운 지난 여름이었습니다.ㅜㅜ)
이 책은 한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재독을 했지만 역시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독후 제 머리속에 남는것은 카뮈의 모습이었고, 이방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뮈를 제대로 만난것같아 반갑기도 하고 어려운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전직 판사이면서 변호사인 크라망스(화자)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자신을 더 높고 고귀한 자리에 올라가고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여인의 자살을 외면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변명처럼 자신의 얘기를 쏟아냅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그를 잘 들여다 볼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을 지배를 받았던 제 2차 대전 당시에 카뮈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사르트르를 포함한 실존주의자들과 PCF에 가입한 좌파 지식인들의 폭력 사용을 용인하는 태도에 반기를 들면서 카뮈는 그들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카뮈는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충성하는 그들의 예속적 태도를 비판합니다. 카뮈는 무폭력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게 됩니다.
이 책 안에서 카뮈는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을 직접 심판하고 단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이 책은 그들에 대한 카뮈의 태도와 생각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모르면 이 책이 이해가 잘 안되면서 재미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닐겁니다.
이 책은 전쟁의 시대라 말하는 20세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결과를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의 잘못으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렵겠죠.
인간이 겪는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히 여인의 죽음을 외면했던 클라망스의 이야기가 유독 그에 대한 얘기만은 아닐거라는 겁니다.
그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수 있다는 겁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감정 이입이 더 잘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깊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온 클라망스의 고백은 좀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며 무감정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으면 좀 서늘해지지만 스스로 반성되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거같아 여기저기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방탕은 아무런 의무도 낳지 않기에 인간을 해방시켜준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방탕에서 소유하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무척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환영받는 일이, 다름 아닌 방탕이에요.
철학에서나 정치에서나 나는 인간의 무죄를 거부하는 이론에 찬성하고, 인간을 죄인으로 다루는 방법에 찬성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명철한 노예제도 지지자입니다.
자유란 무슨 포상 같은 것도 아니고, 샴페인으로 축하하는 훈장 같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어요. 또 무슨 선물이나, 입술을 즐겁게 해주는 달콤한 과자 상자도 아니라는 것을, 아니고말고요. 반대로 자유는 고역이지요. 참으로 외롭고 진력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샴페인도 없고, 다정스럽게 마주 보며 술잔을 들어줄 친구도 없습니다. 침울한 방 안에서 외로이, 재판관들 앞좌석에 홀로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심판 앞에서 홀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모든 자유 끝에는 판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지요. 열이나 괴로움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오랜 자기 탐구끝에 나는 인간의 깊은 이중성을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 기억을 탐색한 결과 나의 겸손은 남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되고, 겸양은 남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며, 미덕은 남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평화적 방법으로 전쟁을 했고, 결국 청렴한 듯한 수단으로 내가 탐하는 모든것을 쟁취했습니다.
.. 그처럼 나의 모든 미덕에는 그 표면을 벗겨보면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이면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나의 결점들이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생활의 불미스러운 부분을 감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테면 내가 냉담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사람들은 그걸 미덕에 기인하는 태도와 혼동했고, 나의 무관심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으며, 나의 극도의 에고이즘이 너그러움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사가 심각한 일이라고 깊이 믿을 수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심각한 일이 어디 있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일에는 그런 게 없다고만 생각되엇어요. 무엇이나 재미있지 않으면 귀찮은 장난 같았습니다. 노력이라든가 신념이라든가 하는것이 사실로 있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에 불만이 많거나 염세주의자가 본다면 많이 공감할것 같은 얘기들이 아주 많습니다.
아니 그가 보여주는 겉으로의 그의 모습은 온통 가식이고 거짓처럼 느껴질만큼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그의 머리는 꽉 차 있는듯했습니다. 정말 카뮈는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어쩐지 그랬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방인에서 보았던 말투며 생각을 여기서도 느낄수 있는걸 보면 그의 많은 부분이 이런 생각으로 메워져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인간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고 쓴 글에 이 책의 클라망스의 생각과 통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간이기에 그럴수 있지만 참회하고 반성하는 사람만이 남을 심판하고 단죄할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결국 전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태도를 말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에 쓰여진 클라망스의 얘기들은 스스로 인간임이 부끄러워지게 만듭니다. 전 그랬습니다.
참 보잘것 없구나... 하고 말이죠.
인간이 위대하다고 부르짖는 것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좀 냉소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전 인간에 대해 그런 실망감이 자꾸 듭니다.
그래서 불교에 입문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인간이 참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삽니다. 그렇게 내려 놓으니 좀 살만합니다.
오늘도 별거아닌 후기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ㅎ

노트북님의 댓글을 읽으며 정말 저도 놀라웠습니다. ㅎ
정말 그러네요. 다사무와 소세키의 반항심이 카뮈에서도 보이니말입니다.
솔직히 전 그런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은 동떨어진 느낌이 있어서 (생각해보니 이것도 우습네요) 전혀 같은 선상에 두고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노트북님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맞아요. 카뮈에게도 그런 이력이 있었고 그래서 반항심이 생긴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볼 참입니다.
카뮈의 마음을 온전히 느꼈다는 느낌이 덜하거든요.
하지만 그의 생각이 너무 궁금하고 계속 알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책은 여러번 읽어도 그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 새삼 신기합니다.
그만큼 나의 생각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계속 읽고 싶은 책을 곁에 두는 일은 궁금한 친구를 곁에 두는 일 같아요.
그래서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아주 재미있습니다.
달라진 나의 느낌이나 생각을 보는 일도 즐겁구요.
그건 조금씩 나라는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얘기도 되겠죠.
책으로 이런저런 활동과 생각을 하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더불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는것 같아 무엇보다 좋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트북님.
이번주도 러닝~ 화이팅입니다.^^
딸기님! 안녕하세요!
저는 옮겨주신 까뮈의 글들에서 감탄이 일어납니다.!
이번주 후기는 딸기님 후기와 치악산님 후기가 통하는 느낌입니다.
왜 그런지,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도 떠오르네요.
자기 비판. 인간을 비판하는데, 그걸 독자들에게 다른 누군가를 그려서 비판하게 만든다기 보다 ,스스로 고백하며 자기 비판으로 고백하는 것이 비슷해 보입니다.
참 신기하네요.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도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해 지하 혁명 세력과 함께 한 적이 있었고, 또 거기서 그들과의 의견 대립으로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까뮈도 비슷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때의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토대로 썼을 수도 있겠네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반항심'이 느껴지거든요.
사회를, 세상에 순응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굉장히 질문하고 고민하고 비판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헤르만 헤세도 그렇고, 위에 말씀 드린 작가들도 그렇고요,,!
어쩌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인간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전에 특유의 순리라는 것에 질문하고 반항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고요.
아무튼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나쓰메 소세키 책에서도 굉장히 강렬했었는데, 후기에 옮겨주신 글만 읽어도 와 닿습니다.
이럴 때면, 제가 모르는 제가 분명 있을거란 생각에, 그리고 제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제가 그런 사람이었고, 그렇게 무수히 많은 찰나가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합니다.
저도 지난주 이후부터 불교에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공부를 하거나, 믿는 수준은 아니지만요,,!
물론 저는 천주교와 성경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맞는말 같고, 결국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글입니다.
매주 후기를 읽고 댓글을 남기는 것이,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재미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환절기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