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라미입니다.
입추가 지나니 확연하게 바람의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묘하게 달라져있고 가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해가 떠오르고 조금 지나면 아직도 무더운 여름의 가운데 있지만요.
저번주에 읽었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을 읽고나니 자연스레 '보바리 부인'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보바리 부인의 저자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모파상의 어머니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모파상에게 문학 수업을 해주고 모파상이 문학의 길로 갈 수 있게 이끌었죠. 그 시대의 제일가는 작가에게 개인 문학 수업을 받았으니 모파상도 오늘날 '대치동 키즈'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모파상의 어머니도 플로베르가 아무리 자기 친구라지만 최고의 작가일진대 자기 아들에게 따로 문학 수업을 해주라고 한 것보니 보통 어머니가 아니었겠다 싶었습니다.
'보바리 부인'에 등장하는 '엠마(보바리 부인)'은 여러모로 여자의 일생에 나오는 '잔느'와 비교가 됩니다.
보바리 부인은 자신을 하염없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편인 보바리를 한심하게 여기고 지루해하고 의사 부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아무 일 없는 일상을 매우 권태롭게 여깁니다.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는 루앙에서 사는 동안 한번도 극장에 가서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그는 수영도 모르고, 검술도 모르고, 권총도 쏠 줄 몰라서, 어느 날 그녀가 소설을 읽다가 마주친 승마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취미도 거의 없고 자신만 바라보고 의사 일만 열심히 하는 남편을 지루해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엠마의 생각이 나옵니다. 그것도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서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바리씨(샤를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엠마(보바리 부인)과는 사뭇 다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는 건강했고 안색이 좋았다. 그의 명성은 완전히 확립되어 있었다. 거만하게 굴지 않았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귀여워했고 절대로 선술집에 출입하지 않았다. 게다가 품행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제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보바리 부인을 읽어서 그렇겠지만 읽는 내내 전혀 보바리 부인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배가 불러가지고! 남편에게 고마워할줄도 모르고! 이렇게 착하고 자기만 바라보는 성실한 남편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한다고?'
엠마가 남편의 싫은 부분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말 한심한 남자야! 정말 한심한 남자야!'
게다가 그녀는 남편이 점점 더 성가시기만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동작이 둔해졌다. 식후에 디저트가 나올 무렵에는 빈 병의 코르크 마개를 자르고 앉았고, 음식을 먹은 뒤엔 혀로 이빨 청소를 했고 수프를 먹으면서는 한 모금 넘길 때마다 꿀꺽꿀꺽 소리를 냈다. 점점 몸이 비대해졌기 때문에 가뜩이나 작은 눈이 광대뼈 위의 불룩한 살 때문에 관자놀이를 향해 치올라가고 있었다.
엠마가 남편이 마음에 안드는 점을 열거할 때마다 저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엠마가 참으로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처럼 느껴졌지요.
하지만 만약 이런 묘사를 학창시절의 순수하고 예민한 감성으로 읽었다면 그 때의 제가 바라본 보바리씨는 정확히 엠마가 가진 그 시선이었을 겁니다. 지루하고, 평범하고, 불결한 남편 보바리. 그리고 엠마에게 몰입하여 신나게 책을 읽을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항상 생각이 드는 부분이 청소년 시기에 많은 책을 접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고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보다는 좀더 많은 문학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 때 그 감성으로 읽었던 느낌, 마음이 저리던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순간은 아직도 조금씩 떠오릅니다.
그 때 갖고 있던 그 감성만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평생 가져가기도 하겠지만, 보통 사람은 그런 감성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지요. 저도 벌써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가면서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섬세한 감성을 잃어버린 내가 보바리 부인을 읽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아!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을까?
결혼을 하고 애기도 낳고 세상살이를 그래도 조금은 살아보고 이 책을 읽으니 책을 읽는 내내 엠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엠마의 감정에 전혀 몰입되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감성이 유리 같이 아주 섬세했을 때, '거만하게 굴지 않고 선술집에 출입하지 않고 혀로 이빨 청소를 하는' 그 남자를 한심하게 여기는 엠마의 그 소용돌이 치는 감정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얼마나 가슴이 두근대고 마음이 저릿했을지요!
읽는 내내 그 점이 참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저도 한참 예전에는 엠마의 감정을 가졌던 적이 있으니까요.
엠마의 생각들 중에서 제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예전의 감정들이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이 사는 땅 위로 떨어져 인생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의지를 나뭇잎인 양 뿌리째 뽑아버리며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쉬지 않고 단숨에 내닫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들이 좋아요. 현실 속에 흔히 있는 속된 주인공이나 미적지근한 감정은 딱 질색이에요...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그녀 자신도 일하는 사이사이에 그 책의 긴 장들을 정신없이 읽어 넘기곤 했다. 그 내용은 한결같이 사랑, 사랑하는 남녀, 쓸쓸한 정자에서 기절하는 박해받은 귀부인... 마음의 혼란, 맹세, 흐느낌, 눈물과 키스... 언제나 말쑥하게 차려입고 물동이처럼 눈물을 펑펑 쏟는 신사분들뿐이었다...
그리하여 홍예문의 클로버 무늬 장식 밑에서 돌 위에 팔을 기대고 턱을 두 손으로 괸 채 들판 저 끝에서 흰 깃털로 장식한 기사가 검정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제가 연애를 해보기 전, 중고등학교 소녀 시절의 마음들이 저 마음과 감정이었지 않았나 싶네요.
뭔가 그 때에는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나의 사랑은 남들과는 특별한 사랑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상상력은 끝도 없이 달려가고 나에게는 번개와 천둥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뭐... 하하하...
저런 엠마의 독백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안타깝고 걱정스럽고 엠마야 그러지마.. 라고 하고 있지요..
보바리 부인은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제 반 정도 읽었는데 마저 읽고 독서 후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미 드림.
안녕하세요 라미님^^
보바리 부인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라미님 말씀 처럼 배가 불렀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고역이겠다 싶습니다.
양귀자의 모순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보바리 부인의 앞으로의 행보가 살짝 예상이 되면서도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후반부의 후기가 기대됩니다.
후기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라미님,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라미님의 학창 시절이 참 소녀스럽고 순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가끔 사랑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설레는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라미님께서 앓어버린 섬세한 감정은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아주 로맨틱한 그런 연애를 꿈꾸던 학창 시절의 순수한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ㅎ
저도 이미 결혼한 지가 10년이 훌쩍 넘어 보바리 부인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만약 신랑이 자기 인생의 진취적인 목표 없이 저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그닥 달갑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보바리 부인이 생각하는 연애가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보바리씨와의 연애 시절에는 어땠을까 궁금증도 생깁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이 좋긴 하지만 보바리 부인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그 입장을 100%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니
남들에게 보여지는 평이 뭐가 그리 중할까 싶기도 하지만 보바리 부인에게도 지극 정성이라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혹시.. 이야기의 후반부에 어떤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