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10월 2주 독서후기] 골드문트와 나르치스-헤르만 헤세
안녕하세요?
길고 긴 추석연휴는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1/3은 시댁에서, 1/3은 친정에서 그리고 나머지 1/3은 저희집에서 잘 보냈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어디 다니기도 어려운 날씨였고 시댁과 친정으로 이동하는 것도 참 힘든 연휴였네요.
그리고 큰이모가 많이 아프셔서 엄마가 많이 우울해하시네요. 근처에 살며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함께 다니고 했던 친구같은 자매셨는데 이제 같이 다니지도 못하게 되니 많이 슬퍼하십니다.
저도 주변 분들이 한분씩 아프신 걸 보니 생각이 참 많이 드네요. 아버지, 어머니가 당연하게 내곁에 건강하게 계시는게 아니라는걸요. 그걸 생각하면서도 또 바쁜 일상 속에서 잊습니다. 철이 덜 든 것 같다는 생각을 매번 하면서, 더욱더 시간과 마음을 들여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추석 연휴 내내 책을 들고 다녔지만 읽지 못했습니다. 저희집에 TV가 없다보니 부모님댁에 가서 저랑 아이들 모두 TV에 푹 빠져 지내다 왔네요. 집에 TV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의 대화후 자신의 천분을 막연하게 느끼며 수도원을 떠나 방랑하는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외모, 순진한 말투, 기품있는 태도는 눈빛 하나만으로, 몸짓 하나만으로 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만으로는 부인들을 그다지도 쉽게 유혹할 수 없었으리라. 그것은 순진한 행동, 공개적인 행동, 욕망의 우격다짐 같은 천진성, 여인이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든 기꺼이 응하는 나무랄 데 없는 자세, 그런 것이었다.
... 그는 유희와 싸움과 탄식에도, 그리고 웃음과 수줍음과 뻔뻔스러움에도 자유자재였다. 그는 여자가 탐내지 않는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그에게서 유혹해 내지 않으려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빈틈없는 감각을 지닌 모든 여성이 냉큼 그의 마음속에서 낚아채는 소재였다. 그것이 그를 여성들한테 호감을 주는 사나이로 만든 것이다.
골드문트는 방랑하는 삶 속에서 수많은 여성을 만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 헤어집니다.
꽤나 많은 분량에서 다루고 있는 골드문트의 사랑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다양하고 다채롭습니다. 제목 '지와 사랑'에서 느껴지듯이 골드문트에게 사랑이란 삶을 이루는 본질이자 핵심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과 사랑이야기는 나중에 나오게 될 골드문트의 예술가로서의 삶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현재 찍고 있는 작은 점 하나하나가 시간이 흐르면 아름다운 선으로 연결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하고 안아주고 환희에 넘치는 감정, 허무한 감정,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 나중에 골드문트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 이브를 조각하는데 융합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그 형상은 한때 그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그의 사랑과 추억의 형상에 불과했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을 거듭했다. 집시의 여인 리제의 표정, 기사의 딸 리디아의 표정,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여인의 얼굴들, 그 모두가 그 근원적인 형상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사랑한 여인의 얼굴 전체가 이 형상에 계속 작용했음은 물론이요, 모든 감동과 경험과 체험이 형태를 제공하고 얼굴 표정을 변화시켜 주었다.
먼 훗날 이 형상을 구체적으로 상징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특정한 한 여인을 표현해 내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어머니로서, 생명 그 자체를 담아 표현할 작정이었다. 그는 가끔 그것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꿈속에 나타날 때도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브의 얼굴과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었다. 즉, 그것은 고통과 죽음과 친숙한 생명의 쾌감을 표현해 낼 작정이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골드문트의 수많은 사랑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헤세의 일생이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헤세도 수많은 여인들을 만나서 나온 경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구요. 헤세의 연애 이야기는 잘 찾지는 못했지만 2번의 이혼, 3번의 결혼 생활 이야기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세의 젊은 시절 가족과 가정에게 무심했던 결혼생활, 방랑자, 유목민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알게 되니 골트문트의 방랑자로서의 모습에서 헤세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페스트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골트문트는 창문에서 빗질을 하고 있는 예쁘게 생긴 처녀를 발견하고, 자신과 함께 죽음이 가득한 이 도시를 도망쳐서 숲속에 들어가서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숲속에 가서 오두막집을 만들고 염소, 닭을 키우며 얼마간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어느 날, 함께 우유를 마시며 가정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 레네가 별안간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어떡하죠?"
아무도 대답을 안했다.. 그들은 겨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긴 시간 여기 그냥 주저앉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참다운 고향이 아니라는 것, 자기는 유랑의 길동무일 뿐이라는 것, 이런 것을 레네는 차차 깨달았다.
골트문트의 방랑자, 유랑자로서의 삶은 싯다르타의 사문 생활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물론 골트문트는 자유로운 삶, 굴종하지 않는 삶과 싯다르타의 수양자로서의 생활은 자신의 본능과 마음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 그리고 자신의 본능과 마음을 극도로 절제하는 것으로 완전히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착한 삶, 소유를 바라는 삶에 대한 시선은 유사한 점을 갖고 있습니다.
정착한 사람들에 대한 골드문트의 시선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성당에서 보고 한눈에 마음을 뺏긴 조각상을 만든 스승에게 가서 지내는 동안 스승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은 타고난 천분, 끝없는 수양과 노동으로 뛰어난 걸작품을 만들어내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정도 매혹적이고 예술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는 장식품도 함께 만듭니다.
스승이 참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몰입하지 않고 수도원이나 다른 이들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만드는 것을 혹독하게 비평합니다.
왜 스승 니콜라우스는 그런 청을 일일이 받아들였을까? ... 두 가지 이유에서, 하찮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주문이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유명한 예술가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한 가지 이유였고, 돈을 모으고 싶은 것이 또 한 가지 이유였다. 돈이라고 해도 큰 사업이나 향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벌써 예전에 부자가 된 딸을 위해서, 그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내기 위해서, 장롱에 아름다운 옷을 가득 넣어두기 위해서, 호두 나무로 만든 침대에 값비싼 이불을 잔뜩 쌓아주기 위해서였다. 마치 그 예쁜 처녀가 어떤 건초더미 위에서도 똑같이 사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듯이!
예술가가 참다운 예술을 하는 것 이외에 돈을 버는 행위를 하는 것을 이렇게 평을 하자 저도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정착한 이들이 재산을 모으고 싶어하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조롱하는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고 돈과 소유에 대해 극도로 무관심합니다. 저도 왜 소유하고 싶어하는지, 왜 돈을 벌고 싶어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장면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없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골트문트는 늘 자유롭습니다.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립니다.
유랑자들은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날씨와 계절에만 예속되어 아무런 목표도 없이, 하늘을 지붕삼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우연에 대해서는 몽땅 자신을 드러내 놓고, 어린애 같은 용감한 생활, 초라하지만 굳센 생활을 보낸다. .. 그들에게는 시간도 역사도 노력도, 집과 재산을 가진 자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발전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묘한 우상도 없엇다... 소유하고 정착한 인간은 모든 존재의 허무함이라든지, 모든 생명의 끊임없는 쇠퇴하든지, 우리를 둘러싼 채 온누리에 가득 차 있는 얼음같이 차디차고 가차없는 죽음 같은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유랑자를 미워하고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저는 누구보다도 정착한 사람의 표본이기 때문에 골트문트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면 굉장히 가엾게 여기고 불편하게 여겼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 유랑자들은 정착한 이들을 가엾게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는가! 제가 이 책이 아니었으면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나만의 편견으로 얼마나 단순하게 판단했을까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골드문트의 관점에 매료되었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어렸을 때 읽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재미있고 한줄 한줄 읽기가 아깝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우울증을 앓고 신경 쇠약에 걸려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을 받았다고 합니다
온 생애를 통해 삶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들어간 철학자이자 탐구가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하나씩 읽을 수록 자신의 어두운 마음, 심연의 끝까지 파고 들어간 작가라는 것을 더욱 알게 되고 그러기에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더욱 기대됩니다.
헤르만 헤세 작품을 읽게 되어 가을이 더욱 풍요로워진 것 같습니다.
이번주에 나르치스와 골든문트 책을 마무리하고 다음 책으로 꼭 넘어가고 싶네요.
모두 한주 행복하게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딸기님 댓글)
긴연휴를 아주 알차게 잘 보내신듯합니다.
집에 티비를 두고 있지 않으시군요. 요즘 그런 집이 많은듯 합니다.
우리집이 그런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는데 재미있습니다. 지금 마음은 아쉽지만 막상 없어지면 왠지 후련할것 같기도 하구요. ㅎ
헤세의 정신 세계가 많이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싯다르타를 다룬 책과 이책이 상반되는 느낌이 있지만 정착한 삶과 소유를 바라는 삶에 대한 시선이 유사하다 해주셨는데 그건 어떤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듭니다.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어본것은 아니지만 인간 붓다라는 책을 본적이 있거든요.
어쩌면 헤세의 정착과 소유에 대한 마음을 짚어보기 위해 쓴 책이 싯다르타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역으로 볼때 나의 진심을 읽을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구요.
한자한자 읽기도 아깝다는 말씀에 저도 마음을 빼앗깁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거든요.
좋은 책 알려주시고 제게 생각할 거리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저도 이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주만에 라미님 글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배가 됩니다.
비오는 월요일이네요. 촉촉한 마음으로 한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