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무슨 큰 일이 있었던건 아니였지만
사소한 일들이 쌓이면서 하는일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었습니다
얼마전에 제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을 옮겼는데
지난주에 내린 비에 누수가 있어 한번 고쳤으나
다음날 다시 누수가 생겨 주말에도 나가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어야 했고
강릉에 살고 계신 친정엄마가 사정상 저희집에 며칠 와 계셔야 하는 일이 생겼고
집으로 오기로 했던 큰 딸은 연휴기간을 생각하지 않고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아
버스표가 없어서 갑자기 서울로 데리러 가야 했었고
다음달에 집을 이사할 예정이라 그와 관련된 일 처리등등 큰 일은 아니나 자잘한 일들이
제가 후기도 없고 소식이 없었던 절반의 이유이고
절반의 이유는 좀 더 좋은 후기를 써야 겠다는 욕심은 있으나 능력이 닿지 않아
노트북을 켜놓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시간들이 자꾸 쌓여서 입니다.
소식이 없어 걱정하거나 궁금해 하셨을 회원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다행히 누수는 어느정도 잡힌 것 같고
건강상 이유로 요양차 저희집에 오셨던 친청 엄마도 좋아 지셔서 가셨고
큰딸도 집에 와서 잘 쉬다 학교로 돌아 갔습니다.
이사는 천천히 준비 중인 상태이구요
그러면 많이 늦었고 부족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 책 이야기를 시작했보겠습니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카를 마르크스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짧게 정리한다고 하면
소유는 내가 사물에 대한 , 탐욕, 욕망, 집착으로 나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으며
존재는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 탐하고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실존 양식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일상적 경험, 구약 성서, 신약성서 그리고 에크하르트 수사의 저술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 소유와 존재를 설명하였습니다.
일상적 경험에서는 학습, 기억, 대화 ,독서, 권위행사, 지식, 신앙, 그리고 사랑까지 여러분야에서 설명을 하였고 저는 그중에 지식과 신앙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식의 영역에서 소유와 존재의 실존양식의 차이는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와 나는 알고 있다"라는 두가지 어법에서 드러난다.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함은 이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을 획득하여 확보하고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앎은 기능적인 것으로 생산적 사고과정의 한부분이다
-존재양식의 지고의 목표는 보다 깊이 아는 것인 반면, 소유양식의 지고의 목표는 보다 많이 아는 것이다.
예전에 지대 넓얕이라는 책이 유해한적이 있었습니다.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위한 책이었습니다.
여러분야에서 이정도는 알고 있으면 누구와 대화를 해도 무식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읽었던 책인데 사실 내용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깊이 아는 것이 좋겠지만 내가 무엇에 관심이 많이 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많이 아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식을 가지고 있는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자기화 하는 것이 지식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리히 프롬은 교육제도에서 학생들에게 소유물로 지식을 공급해 주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발성과 자율성이 위축되지 않고 하나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공교육의 단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유양식에서의 신은 하나의 우상이 된다. 예언자들이 말하는 의미로는 인간이 만들어낸 한낱 사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자신의 힘을 투영함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약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존재양식으로서의 신앙은 일차적으로 특정한 이념들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내재적인 성향,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이 경우에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신앙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 일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경계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에게 의지함으로서 자신을 소외 시키고 약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언행에서 그 종교가 내세우고 있는 가치나 이념 같은 것들이 겉으로 어느 정도는 드러나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가 일하는 곳에서 서비스를 제공 하던 분 중에 한분이 예전에 목사님이셨다가 퇴직하고 몸이 불편하여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고 계셨는데 한번도 저에게 교회에 다니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언행에서 그 분이 참 종교인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셨고 그게 더 직접적인 전도가 될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목회활동을 하시면서 주위에 있는 수많은 분들을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우셨음에도 사회에 기여한것이 없다고 하시며 사후 사체 기증까지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제가 생각하는 신앙안에 있는 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주요 주제의 하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떠나라, 모든 속박으로부터 너 자신을 풀어라, 존재하라!" 이다
-안식일의 역할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 완전한 조화를 재수립한다는 의미에서 평온함을 뜻한다
-새로운 황야란 다름 아니라 땅의 원주민을 쫒아내거나 멸절시키지 않고서 평화와 풍요를 약속하는 메시아적 비전에 바탕을 둔 땅인 것이다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그 어떤 것도 파괴하거나 새롭게 짓지 않음으로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 존재적 실존 양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가 헤브루인들을 데리고 황야에 가면서 기존의 비록 노예이지만 안정된 의식주에서 벗어나 해방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상징으로 황야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것에서 자유로워져야지 존재적 실존이 가능하다는 말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에크하르트 수사의 소유와 존재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가난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욕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말하며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식과 인식의 행위(사물의 근원까지 파고들어서 그 원인을 통차하는 행위) 차이를 말하고 있으며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라는 의미 입니다. 자신이 지닌 사물과 행동으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심지어 신에게조차 묶이고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이기 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존재는 삶이며 활동이요, 탄생이며, 재생이고, 흘러 나와서 흘러가는 것이며, 생산활동이다.
이부분에 대한 설명은 요약이 잘 안되어서 저는 좀더 생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음은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소유적 실존 양식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가부장사회에서 아무리 가난한 남자라도 자산가였다. 아내, 자식, 가축을 소유하고서 자신이 절대적인 지배자임을 느낄수 있었다.
-모성의 원칙은 무조건적 사랑의 원칙이다. 모성애는 은총과 자비이다.
-부성애는 조건적이다. 아버지는 자기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을 사랑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정의이다.
남자는 누구나 결혼만 하면 아내와 자식을 소유하게 되면서 자산가가 된다는 견해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자산을 늘리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라는 내용 역시도 과거 노동력이 곧 재산이었던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라 여성의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는 했지만 결국 소유가 남성적이고 작가는 그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우리는 시간을 존중하되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유적 실존양식이 지배할때는 시간에 대한 존중이 굴복으로 변한다.
많은 철학자들과 선구자들이 앞서 이야기 했듯 미래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말인것 같았습니다.
시간을 존중하되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저는 잘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늙어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젊음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며 늙었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존재적 실존양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마지막 장에서 새로운 사회의 특성이라고 하여 새로운 사회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목표를 향해서 가는 데에 중요한 첫걸음은"건전하고 이성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생산의 수행이다.
어떤것이 병적인 소비이고 어떤 것이 건전한 소비인지에 관한 지침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국가차원의 분별있는 소비행태에 대한 홍보를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건전하고 분별 있는 소비는 전적으로 기업의 이익과 성장의 관점에서 생산을 결정하는 기업 경영인과 주주의 권리를 과감하게 제한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막강한 힘에 대응할 수 있는 분별있는 소비형태를 지향하는 압도적인 국민의 열망이 필요하며 시민들이 소비자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로 불매운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존재지향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제적 및 정치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산업적 및 정치적 참여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한에서만, 우리는 소유적 실존양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투철한 휴머니스트들의 공통된 확신이다.
기업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경영에 공동결정권을 행사하거나 대표가 될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아가 정치에서도 구성원들이 적절한 정보와 자신의 결정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의식이 있으면 그들의 결정은 고도의 통찰과 객관성에 따라서 이루어 진다고 하며 인간의 사적 결정은 정치적 결정보다 대체로 더 현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삶에서 능동적인 공동결정은 정치와 경제의 최대한의 분권화를 요구한다.
중앙 집권화를 자동차에 비유하며 온갖 관료주의적 행정계층들이 자동차의 바퀴와 기계 역할을 하고 있어 능력이나 지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단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면 쉽게 국가라는 기계를 조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권력을 작은 행정 구역에 위임하면 자기네 지역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공동 참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참여는 관료주의 경영이 휴머니즘적 경영으로 대체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관료주의는 인간을 사물처럼 관리하는 방법이며 값싸고 쉽게 통제하고 수치화 하기 위해서 사물을 질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양적 관점에서 취습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이히만을 극단적인 관료주의로 예를 들었습니다. 아이히만은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사랑하지도 않았고 그저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그결과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고 유대인 추방령을 작성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시대에도 자신이 몸담고 일하고 있는 곳에 관료주의적 규정을 어기지 않기 위해 환자를 거절하거나 사회보장 제도의 수혜자를 굶어 죽도록 방치하는 일이 일어나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과 상황에 대한 보다 강력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비관료주의적인 새로운 행정방식을 고안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업광고와 정치선전에서 모든 세뇌적 방법이 금지되어야 한다
상업광고과 정치선전의 최면술적 방법이 소비자의 유권자의 정신과 마음의 건강에, 특히 명징하고 비판적인 사고능력 및 고유의 정서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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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가 메워져야 한다.
이 격차를 제거하려는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와 부강한 나라 사이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연대감과 책임의식은 자연 약탈로 인한 황폐해진 땅덩어리를 물려 받게 될 우리의 후손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부의 해악은 연간수입의 최소치를 보장해줌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
인간은 삶에 필요한 것 이상을 취득해서도 안되겠지만 생존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소 수입보장제도는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의미하며 이러한 복지 정책이 실현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력한 약자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가부장적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여성은 가부장적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가부장적 지배로부터의 여성해방은 사회의 휴머니즘화를 위한 기본전제라고 합니다. 또한 약자에 대한 힘의 행사는 현존하는 가부장제의 핵심이며, 미개국가에 대한 산업국가의 지배,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기성인의 지배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정부, 정치가, 시민들에게 모든 실제적인 문제에서 지식을 조달하고 조언을 주는 과제를 수행할 최고 문화협의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나라의 지적 및 예술적 엘리트로서, 우수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남녀 대표자들로 협의회를 구성되어야 하며 이 문화 협의회는 충분한 자금을 지원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전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접하는 정보는 뉴스나 신문, 텔레비젼을 통해서이며 그 정보는 기껏해야 피상적인 기성품이라고 하며 대중들은 정치적 결절을 낳는 모든 분야에서 핵심적인 선택안들을 포괄하는 정보를 제공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기본 연구는 산업 및 군사상의 적용문제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과학적 연구에서 나온 모든 결과를 실제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위험을 초래하며 산업상 이익과 군사적 유용성은 이론적 인식의 실용적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필수조건은 원자의 무장해제이다.
비인간화된 인간은 결국 광기에 사로잡혀서 장기적으로 생명 있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며, 단기적으로 핵무기나 생물학적 병기의 자살적 사용을 억제할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인간은 소유를 선호하게 되고 자신이 소유한 것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여
더 많고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더 나은 것을 소유하려는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인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것이고 삶에 만족도 또한 소유한 만큼 행복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린왕자에서 보면 아름다운 2층집을 보았다고 어른들에게 이야기 하면 어른들은 가격이 얼마인지를 궁금해 한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의 가치 그리고 인간이 가진 가치는 숫자로 나타내기 어렵고 다른 사물이나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경험에서 나오는 만족감, 감동, 행복, 기쁨등 수치로 나타낼수 없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고유한 감정을 얼마나 누리고 있느냐가 제가 이책을 읽고 내린 존재의 결론입니다.
이책을 읽고 나서 이책은 후기 쓰기가 그 어떤 책 보다 어렵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 했다고 하지만 제가 읽기에는 난이도가 높았고
글만 읽었지 내용은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설프고 미흡하게라도 후기를 써야 겠다고 마음 먹은건
이렇게 라도 해야지 저에게 남는게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았고
다음에 에리히 프롬의 다른 책을 읽더라도 좀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좀 무리가 되었지만 후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남긴 후기는 정리도 아니고 책 내용을 어설프게 요약한 수준밖에는 안되지만(그것도 전체를 다 요약한 것도 아니고 제가 요약한 부분은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끝을 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늦은 후기를 올리게 되었으니
그점 양해 하고 후기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회워님들이 계신 곳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주는 연휴 때문인지 일주일이 더 짧게 느껴지네요
편안한 금요일 저녁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