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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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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9월 4주 독서모임][완독]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주민현/시집/평점4점

8월 말로 나전칠기 수업이 끝나고 9월 부터 매주 월요일 시 읽기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소설이나 비 문학 책은 계속 읽고 있었지만 시는 제대로 읽어 본적도 없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순수 문학이었는데

동네 책방에서 시 읽기 수업이 있다고 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업 방식은 정해진 시집 중에서 한 권씩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시집의 시인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시집 중에 마음에 드는 시를 5편 정도 선택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고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해본적이 없던터라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참여 하게 되었고 덕분에 요즘 열심히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 영문을 독해 하는 심정으로 곱씹으며 읽다 보니 시 한권 읽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번만 읽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더욱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텍스트 양과는 상관 없이 일주일에 시 한권을 읽기도 벅차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시집에 관한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먼저 시 한편을 소개 하겠습니다.


꽃 없는 묘비

우크라이나에게

주민현


시간의 열차 맨 뒤 칸에 서서

지나온 시절의 영사기를 돌리면


쏘아 올린 포탄에

아이들의 신발이 멀리 날아가고


산불에 집을 잃은 새들의

완전한 멸종을 슬퍼하는 이들이

저마다 작은 행진을 벌이고 있어요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 싶어요


작은 거미가 만드는 집의

조형적인 아름다움


새가 물로 날아가는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기쁨


번지는 저녁 빛 그림자 아래


고양이의 가르릉

이 사고뭉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없이 걸어요


도시의 호텔은 고독한 눈동자

부랑자는 끝내 들어갈 수 없는 두꺼운 철문


뒷골목에서 아동복을 파는 노점상이

옷들의 긴 첨탑을 쌓아 올리고


네 이웃을 위로하라, 맨 꼭대기의 교회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요


개들은 아름다워요

존재의 불행을 깨무니까요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얼굴만을 기록해왔지만


당신과 내가 같은 호흡을 나누어 가진다면

우리의 얼굴도 다시 쓰여야겠지요


시든 꽃과 죽은 새와 이름 모를 당신과 걸으며

우리 가방에 달린 작은 방울이 흔들릴 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부인 세계라 믿으면

이 지면은 평평해요


세계의 가장 사적인 얼굴을 수집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걸어요


나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당신은 폭격을 피해 떠나고 있어요


그 나라엔 영문을 모르고

주인 곁에서 끙끙거리는 개가 있겠지요


거리엔 크고 작은 묘비들이 꽃 없이 생기고 있어요


이 시는 우크라니아 전쟁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나마 의미를 파악하는데 좀더 수월했습니다.

쏘아 올린 포탄에

아이들의 신발이 멀리 날아가고


산불에 집을 잃은 새들의

완전한 멸종을 슬퍼하는 이들이

저마다 작은 행진을 벌이고 있어요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 싶어요


작은 거미가 만드는 집의

조형적인 아름다움


새가 물로 날아가는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기쁨


번지는 저녁 빛 그림자 아래


고양이의 가르릉

이 사고뭉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전쟁이 어떤 대의 명분으로 치뤄지는 모르겠지만 전쟁과는 상관 없는 어린 아이들과 작은 생명체가 희생을 당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던 작은 일상들이 파괴를 당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그 전쟁으로 인해 얻는 것이 그것들을 다 파괴하고 얻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정말 누구를 위한 전쟁인 걸까 생각이 듭니다.

당신과 내가 같은 호흡을 나누어 가진다면

우리의 얼굴도 다시 쓰여야겠지요


세계의 가장 사적인 얼굴을 수집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걸어요

우리가 모른 척 하지 말고 함께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전쟁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많은 불의와 부조리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메세지가 이 시 뿐 아니라 다른 시에서도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 작가라 그런지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레텔과 그레텔이라는 시가 그랬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아니라 남성의 모습을 지우고 여성만 존재하고 있으며 아담의 갈비뼈가 아닌 우리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탄생한다고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꽃 없는 묘비로 돌아가서 시의 제목이 들어가 있는 마지막 연을 보면

거리엔 크고 작은 묘비들이 꽃 없이 생기고 있어요

우리가 묘비에 꽃을 갖다 놓는 경우는 누군가 묘비의 주인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꽃이 없다는 것은 가족들이 모두 죽거나 흩어지거나 아니면 아직 전쟁 중이라 애도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는 전쟁중이며 아직도 누군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는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잘 표현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넓어지는 세계 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작고 미세한 균열, 균열들

이 문장이 좋았습니다. 작은 존재 작은 변화가 때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죠

예전에 아이들이 어렸을때 함께 읽었던 그림책책 로자 파크스의 버스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로자 파크스가 살던 시대에서는 흑인이 버스 앞자리에 앉으면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고 앞자리가 다 차면 유색인종은 백인들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로자는 버스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자의 명령에 아니요 라고 하며 일어나지 않았고 기 이유로 경찰에 체포 되면서 흑인들이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하게 되고 끝내 대 법원에서 흑백분리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 졌다고 합니다. 로자의 아니요 한마디가 불러온 변화 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 누군가를 위해 베푼 작은 선행 하나가 나비의 날개가 되어 좀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늘 명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시들이 많으나 너무 길기도 하고 내용이 너무 길어질것 같아 이정도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라고 하면 멀게만 느끼고 어렵다는 생각에 가까이 하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태주의 시 구절에 있듯 오래 보고 자세히 읽어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마음에 닿는 구절도 있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또한번 내가 선입견으로 지레 겁먹고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구나 이것 말고도 또 어떤 것들을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멀리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이 가을 아름다운 시 한편씩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남은 주말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10월 1주는 가족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후기 작성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또 다른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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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딸기
Sep 29

제글에 댓글을 써주신 치악산님께 시를 보고 싶다 말씀드렸는데.. 이미 쓰셨네요. ㅎ 반갑습니다.

시 수업이라니 너무 멋집니다.

끊임없이 독서에 관한 수업을 듣고 계신듯 합니다.

독서에 관한 이런 수업이 독서에 많이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읽기 전에 시인이나 시에 대해 알아보고 좋은 시를 뽑아보는 과정 속에서 이미 시 속에 빠져있을거 같아요.

어쩌면 그런 밑작업이 시를 만나기전 설레임같아서 마치 여행전의 설레임과 비슷한 결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아무튼 저같은 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수업이 무척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주에는 이런 수업도 있다니 무척 부럽습니다. ㅎ


제목에서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를 본 순간부터 어떤 시일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읽은 시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아픔이 곳곳에 숨어있네요.

사람이 있는 곳에 전쟁이 없을수 없다하지만 그래도 전쟁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상은 오지 않겠죠ㅜㅜ


저도 예전에 그린카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재능있는 흑인 피아니스트를 모시는 백인 남성, 두명의 남성이 연주 여행을 가면서 겪는 얘기입니다.

누가봐도 피아니스트의 대우가 월등할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흑인이 겪는 애로사항을 고스란히 겪으며 둘 사이에 특별한우정이 생기는 얘기인데 주는 메시지가 마음을 씁쓸하게 하더라구요.


아직 세상의 곳곳에는 해결해야할 일들이 산재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더 깨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시 얘기는 제게도 자극이 되는 부분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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