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라미입니다.
저번주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번주 내내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주말에만 조금 읽었는데 글을 쓰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라 민망한 마음에 차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입니다. 저번주에 글을 쓰지 못해 이번주에 좀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두꺼운 책은 아니어서 이번주에 완독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절에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고, 절에 있는 유치원을 다녀 어릴 때 반야심경을 외우기도 했었지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암기 대회처럼 외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 부처님과 관련된 동화책, 이야기책을 많이 읽었던 터라 부처의 일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딸기님이 불교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읽게 되고, 사람관계나 제 인생을 돌이켜볼때 불교의 이야기들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적지 않은 나이가 되면서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터-가정을 반복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이렇게 개미처럼 하루하루 살면 안되겠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싯다르타라는 책에 손이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노트북님께서 종교와 관련된 책과 관련된 후기를 올려주신 적이 기억이 납니다.
종교에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해서는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고민했을지, 자기 내면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갔을까요.
실제로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를 쓰다가 스스로의 자기 체험 없이는 싯다르타를 집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고, 1년 반의 자기 체험 끝에 다시 집필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이 재밌어서 잘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의 구성은 1부와 2부로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고 전체적인 흐름은 소년, 청년 , 장년, 노년이 된 싯다르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바라문(인도의 높은 계층, 사제, 학자 등)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싯다르타는 명석하게 사고하며, 영혼을 한군데에 모으며, 자기 존재의 내면 속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싯다르타의 정신과 의지, 완벽한 행동거지를 사랑합니다. 모두가 싯다르타를 사랑하고, 모든 이의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 됩니다.
싯다르타는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했다...(중략)... 정신은 만족을 얻지 못하였으며, 영혼은 안정을 어디 못하고, 마음은 진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다...(중략) 자아, 이 가장 내적인 것, 이 궁극적인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중략)...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내어야만 하며, 바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탐색하는 것이요, 우회하는 길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 불과하다.
이렇듯, 다른 사람이 보기에 완벽한 삶, 이미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싯다르타는 고뇌하던 와중, 사문(머리를 깎고 돌아다니며 도를 닦는 수행자, 탁발승)을 만나게 됩니다. 바싹 마른데다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몸뚱이로 순례를 하는 고행자를 보며 싯다르타는 그 날 밤 아버지에게 고행자들 무리로 떠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싯다르타가 아버지를 떠나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못볼 수도 있는 마음에 방을 나서지만 싯다르타는 밤새도록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서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시간이 지나고 창문을 통해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고, 다시 잠자리로 되돌아갔다가 또 한 시간 뒤에 집 앞으로 나와 창문을 통해 싯다르타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밤새도록 또 다시 나와서 몇 차례나 보아도 아들인 싯다르타는 꼼짝 않고 서 있습니다.
나중에 뒷부분에서 싯다르타는 떠나간 자신의 아들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싯다르타는 자신이 아버지를 떠나고 난 후에 한번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외로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인간 세계가 똑같은 고통이 반복되고, 똑같은 모습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사문들과 함께 고행을 하다가 고타마(석가모니)를 만나게 됩니다. 고타마가 완성된 사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깨달음은 가르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있어야 얻을 수 있음을 알고 고타마를 떠나고 사문 생활도 그만둡니다.
사문생활을 떠나면서 싯다르타가 바라보는 인간은 이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야, 바람에 나부껴 공중에서 이리저리 빙빙 돌며 흩날리다가 나풀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존재야.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가르침과 법칙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근심 걱정들, 사업들, 사랑과 고통들의 모습을 어린아이나 짐승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며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을 위해 괴로워하고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싯다르타는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자신의 아들에 대한 끝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고 난 후에는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싯다르타의 소년 시절부터 너무나 완성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이어서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완벽한 모습의 인간이 있나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청년 시절의 싯다르타가 사문 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부분은 소년 시절보다 더욱 완성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가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이 세계를 좀더 이해하고 인간을 잘 알게 된 더욱 성숙된 말들이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목표는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중략)...
제 기준에서는 청년 시절의 싯다르타도 충분히 완성이 되어 있는 모습이어서 그 다음의 모습은 또 얼마나 깨닫고 완성에 가까운 모습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청년 시절 이후 세속적인 삶을 사는 싯다르타는 몇 해가 지난 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이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수치스러운지 알고 자신을 소멸시켜 버리고, 자신의 삶을 박살내어 버리고 싶어합니다.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온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주데바의 조수가 되고, 뱃사공을 하면서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사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자기 완성이 되어가는 장면은 그 내용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고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싯다르타가 완성에 이른자가 되면서 모든 것을 존중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게 보인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 내면이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싯다르타의 구도의 길, 수행하는 길을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저 마음을 지니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좀 어려운 책이어서 싯다르타가 말한 내용의 반이라도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립적인 두 삶, 고행과 순례하는 사문으로의 삶, 사랑을 하고 미워하고 부를 탐하고, 죄를 저지르고, 권력을 갖는 삶을 모두 겪고 난 후에야 이 세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싯타르타를 보면서 삶이란 어떠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도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싯다르타의 어릴적 친구이자 승려가 된 고빈다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구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터인즉, 이것이 나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고빈다에게 싯다르타는 말합니다.
스님은 지나칠 정도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 행위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누군가 구도를 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용이 한줄한줄 묵직한 이야기라 읽기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밌기도 한 책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을 최대한 이해해보고자 했으나 참으로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헤르만 헤세 작품들을 더 읽어보면 헤세가 이야기한 세계의 '단일성' 에 대한 내용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을 읽어보면 싯다르타에서 말했던 이 세계에 대한 깨달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주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기 위해 금요일에 일찍 올려보았습니다.
이해되지 않은 책의 후기를 쓰느라 내용이 중구난방인 것 같아 민망합니다.^^;
서늘한 주말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야.. 이번 주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 자꾸만 등장하니 덩실덩실.. 죄송합니다.
이 책도 제가 한 4년 전에 읽었는데요. 정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나 시간이 지나서인지 좀 희미합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적은 감상평을 옮겨와 보겠습니다.
벌써 15년 전, 제가 꽤 존경했던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 그를 데미안 같다고 한 말에 홀린 듯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 당시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이 주는 강렬함이 컸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데미안은 저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몇차례 더 읽었고 읽을 때마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더 읽어와야겠다고 몇 권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책장에서 있던 싯다르타가 갑자기 눈에 띄어 읽게되었습니다.
다 읽고 난 뒤 여기에 기록은 하지만, 제가 감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책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냥 전 한번 읽었다. 그리고 몇번을 더 읽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정도가 감상평이라고 할 수 있을것같네요.
신기하게도 책은 잘 읽힙니다. 스토리도 어떻게 보면 눈에 잘 들어옵니다. 그러다 중간중간 큰 생각들이 훅 들어옵니다. 특히 마지막 고빈다와 한 대화는 두번이나 읽었지만 절레절레.
와... 제가 적은 감상평을 보니 진짜 이 책을 잘 이해 못한게 느껴지네요. 라미님도 민망하다고 하셨는데 저의 감상평이 더 민망하네요.
그만큼 쉽지 않은 책인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번 후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라미님 반갑습니다. 어렵지만 좋은 책을 읽고 오셨네요. ㅎ
이런 책은 한번에 이해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말씀을 듣는것이 참 좋습니다.
언젠가 이 말들을 다 이해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듣거든요.
불교를 공부한다 했지만 그건 학문처럼 책을 보며 하는 공부가 이니기에
항상 마음이 깨어있음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이러저런 생각에 대한 나의 자세를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내가 습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모든것들이 업식이고 그게 쉽게 바뀌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금씩 돌아보고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제가 하는 불교 공부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처럼은 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의 행동과 생각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나를 인지하는 일이고 그럼 그 순간 이어지던 나의 행동과 생각의 맥이 끊기고 그래서 멈출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무한의 반복입니다. 완성되기는 어려운것이 인간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되도록 노력할 뿐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가진 괴로움을 줄일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하는것이구요.
써주신 문구들이 어려운 말이네요.
저도 이해가 어렵지만 그런 말에 왠지 위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라는 말이고 그 이치를 깨달으면 괴로움도 사라진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것이라는 것은 알겠거든요.
제게 있는 붓다에 대한 책도 언젠가 읽으려 했는데 이렇게 라미님이 시작해주셔서 저도 곧 읽게 될거 같네요.
진심어린 좋은 후기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