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황토 - 조정래
한주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이번 주는 댓글 활동도 거의 못하고 방문도 거의 못한 것 같습니다.
저의 주 활동지인 회사에서 스프링쿨러가 센서 오류로 터지는 바람에 컴퓨터 고장이 불가피한 상황에 한동안 컴퓨터 사용의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냥 한대 사주면 될 것 같은데, 회사 돈이라 그런지 어떻게든 고쳐서 주려고 안감힘을 쓰더라구요 ㅎ
요즘은 저에게 자질구레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게도 평온한 일상을 보낼때는 무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일들이 하나씩 터지면 '세상이 날 가만히 두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니 우습기도 하고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번주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인간연습'이라는 책이 너무 잘 읽혔기에, 중간에 조정래님의 책을 추가로 빌렸었는데, '황토'라는 책입니다. '인간연습'보다 먼저 씌여진 책으로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쳐 휴전 협정 체결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주인공 '점례'라는 한 여인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여자라서, 딸이라서, 아내라서, 엄마라서 점례의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더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주인의 과수원에서 일하고 품삯을 받는 일을 해왔는데, 주인마님이 일본에 간 틈을 타 주인은 미륵댁(점례의 엄마)을 범하려는 것을 발견한 남편이 주인을 피투성이가 될때까지 혼을 내준 사건으로 주재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17살의 점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주재소의 주임(일본인: 야마다)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점례 집의 형편이 살만하게 되었지만 점례는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으며, 야마다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는 창피스러움에 감옥같은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이후 점례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임신 사실을 몰랐던 점례의 아버지는 충격에 쓰러지고 맙니다. 차마 찾아가지 못하던 점례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겨우 찾아갔지만, 왜놈 손에 시집 아닌 시집을 보내야 했던 한탄소리만 남기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납니다.
해방 후 야마다는 야반도주를 했고, 아들과 점례는 버려진 신세가 되고 맙니다.
"어디 또 한번 뻐겨보시지? 제까짓 게 언제부터 그리 귀한 몸이 돼서 사람을 앉아서 맞고, 앉아서 보내? 왜놈 첩질이 그렇게도 당당한 세도던? 바로 첩질한 뻔뻔스런 낯짝이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나돌아다니는 게지?"
제일 친했던 친구 복실이가 외삼촌을 징용에서 면제해 달라고 찾아왔을때, 야마다의 아이를 임신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어쩔수 없이 앉아 있어야 했고, 복실이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점례는 해방 후 만난 친구에게 몹쓸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몹쓸 소리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인 것을 보고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고, 점례의 상황을 다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이 스물에 애비 없는 자식을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점례는 어머니의 뜻으로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큰이모를 따라 가게 되고, 잡다한 일손을 도우면서 큰이모네서 지내다 스물넷 나이의 '박항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박항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독립투사로 대항하다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고, 그는 해방 후 친일파 놈들을 처단하며 지내다 세상이 안정이 되자 이모부의 철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된 점례는 처녀라고 속이고 하는 결혼에 아이를 낳은 몸의 변화를 들킬까 불안해 하지만,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돌아가신 시부모님께 마음 속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속이면서 결혼을 해야했던 점례의 상황에서 얼마나 안도되는 상황이었을까 공감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이미 고인이 된 시부모님께 사죄의 말을 전하는 점례의 행동에 그 죄책감이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항구는 말수는 없었지만 친절했고 첫째 세연이, 둘째 세진이를 임심한 점례를 살뜰히 보살폈으며, 지극한 위함에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해방 후 남북의 정치이념이 갈리면서 김구 선생님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박항구는 큰 상심을 하여 술먹는 일이 잦아지고, 침울해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당신네 이모가 아니라고 쳐놓고 냉정히 생각해 봐.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됐는가 말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마구 부려서 된 부자야... 다 같은 사람이 한쪽은 주인으로 배가 터지고 다른 쪽은 종으로 굶어죽을 지경이 되고, 이건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라 지옥이야, 지옥"
농지개혁으로 하루 아침에 재산을 거의 잃어버린 큰이모네를 걱정하는 점례에게 남편 박항구가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느껴지듯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군들을 데리고 인민위워회 부위원장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북쪽에서도 농토를 고루고루 나누어주었다고 하잖아. 그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
전쟁통 속에서 격전지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사람들도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인민군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자 상황은 다시 역전이 되었고,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의 아내였던 점례는 첫째 세연이를 큰이모에게 맡기고 갓난쟁이만 데리고 체포됩니다. 긴 심문의 시간을 버티면서 나빠진 몸 상태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니 설사를 하는 등 세진이의 건강도 나빠졌습니다.
"사타구니는 벌겋게 짓물렀다. 숨만 할딱거릴 뿐 이제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젖꼭지를 물렸지만 뱉어내지도 못했다. 목에 가래까지 끓이며 숨을 할딱거렸다.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아이가 하루만 설사를 해도 걱정인데, 제대로 된 모유도 먹이지 못하고 치료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점례의 마음이 얼마나 닳고 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다시 시작된 심문에서 서양 군인 프랜더스 대위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세진이를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신원보증과 함께 혐의없음으로 석방이 됩니다. 하지만 온전한 자유가 아니었고, 아이의 퇴원을 기다리는 명목으로 미군 장교 숙소의 잡일을 하게 됩니다. 일을 하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지만, 또 하나의 야마다와 다를 바 없었던 프랜더스 대위의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세진이는 결국 죽게 되고, 힘들어하는 점례의 곁에서 프랜더스 대위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로하지만, 신원보증의 이유로 그녀가 떠나가는 걸 막은 그는 첫째 세연이를 그녀의 곁에 데려오면서 떠날 이유 조차 없애버립니다.
처음 아이를 점례와 떼어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그녀를 속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랜더스 대위 또한 자식을 가진 아버지라 그랬을까요? 진심으로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옮겼던 것이고, 아이가 죽었을 때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모습은 가식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점례와 자신의 아들을 두고 그의 나라로 떠나버리고, 또 다시 홀로 남겨진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거친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나라는 두 동강이가 난 채 끝난 전쟁이었다. 도로 38선 그 근방에서 끝난 그 전쟁은 이긴 쪽도 진 쪽도 없는, 왜 싸웠는지 모를 이상하고도 어이없는 전쟁이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진 못했지만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나는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고 간단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지금도 이런 어이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부모에게 무한정 바라기 마련이고, 그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잘못일 것이었다"
이후 점례는 억척같이, 오로지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아가지만 뜻대로 커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탓을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그 시절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식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마음을 미련하다고 하기 힘들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서 점례를 이해하지만 자식된 도리로 점례 자식의 이해되지 않은 행동은 혀를 차게 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희 시할머니께서도 딱 점례같이 3번의 결혼과 자식들을 낳으셨고, 전쟁통을 이겨내시며 살아오셨다고 막연히 들을 때는 '옛날에는 다 그랬지'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컸는데 우연히 이런 책을 읽으니 마음에 더 와 닿으면서 고단했들 당시 여인들, 사람들의 삶은 살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역사 공부가 너무 싫었었는데, 요즘 부쩍 관심이 가니 우습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배워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시원한 밤 되세요!
안녕하세요 가다쿵님
황토의 점례가 라미님이 후기로 쓰신 여자의 일생의 잔느의 다른 버전 같은 생각이 듭니다.
동서양 시대를 막론해서 여자의 삶은 왜 그리도 척박하고 힘들었을까요
가다쿵님의 시할머님께서도 3번 결혼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80대 이상 9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소설 한권은 뚝딱 나올 만큼 스펙타클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위안부에 끌려 가지 않으려고 재취로 들어가신 분도 있고
결혼을 해서 아들을 못 낳은 죄책감에
스스로 둘째 부인을 찾아서 자신의 자리를 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소설속 점례이야기가 그리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슬픈 현실 입니다.
책요약을 잘 해 주셔서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가 되고 덕분에 후기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노트북님의 말씀처럼 커밍아웃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