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저는 드디어 토지 20권을 읽고 있습니다.
20권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부분은, 아직까지는 그 장엄한 대하소설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경리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 선생님의 스타일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마지막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부 이후에 6부도 쓰려면 쓰실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토지를 끝낸다는 아쉬움도 잔잔하게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장을 읽는 기분은, 후련함(?) 보다는 저 역시 아쉬움이 왠지 더 크네요,,!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던 많은 평사리 주민들과 이제 제가 정말 이별을 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딸기님께서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표현해 주신 그 아쉬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5부 5편 1장. 대결
이 장에서는 온통 상의가 고등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상의가 다니는 진주여고는 각 지역 유지나 부호들의 딸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입니다.
그리고 몇몇의 진주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자녀들이 다니고요.
하지만 절대적인 수 부족으로 일본인 학생들이 죽은 듯이 다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아무리 식미지의 학교였어도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다닌다는, (그 어려운 시절 딸을 위해 유학을 보내고 적지 않은 돈들을 송금하며 공부를 시키는 집들이 보통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학교 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언급한 한 사건 이외에 학교에서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핍박하고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문제가 커질 것 같아 학교 측에서 사과를 하고 아이는 무사히 학교로 복귀를 했었으니까요.
기숙사는 난방비 문제로 난방비가 많이 드는 시즌에는 방을 줄여 학생들을 합치고, 또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방을 다시 늘려서 기숙사 운영동을 늘린다고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각 기숙사 1료, 2료의 사감들이 있는데, 그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와중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감을 괴롭힐 목적으로, 학생들의 신뢰와 존경도 받지 못하는 1료의 사감이 나름의 횡포를 놓습니다.
1료, 2료의 학생들이 합쳐져 새로 기숙사 방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각 방의 실장을 모두 1료 출신으로 바꾸고, 2료의 학생들은 동급생인데 그 밑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기숙사 방일 뿐인데도 실장과 그렇지 않은 동급생 사이에서 상하관계 같은 서열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상의는 자신의 친한 친구 진영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중간 정도의 학업성취도를 보이며 딱히 찍힐 행동을 하지 않은 상의가 굳이 친구인 진영에게 무능력한 동급생으로 보이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희로서는 그러려니 하고 지내면 될 텐데 하겠지만, 그 사건은 상의가 알기 전에 먼저 알았던 친구들조차도 눈치를 보고 문제를 인식할 정도로 민감한 여고생 사이에서는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2료 출신의 학생들은 1료의 사감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했는데, 어느 날 그 1료 사감이 주말이면 아이들이 금지된 한복을 입고 화장등을 하며 노는 자유를 암묵적으로 묵인해 주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습하여 그들을 들춰내고 호되게 꾸짖습니다. 심술이었던 것이죠.
문제는 이때, 평소 전혀 반항의 기질을 보이지 않고 어찌 보면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더 세심하고 여리고 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상의가 사감에게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잘 못한 게 있다면 처벌하시라. 합니다.
태도를 지적하니, 그럼 선생님의 태도는 떳떳하신 건지 되묻고, 가장 친한 친구와 한방에 넣어 상하관계로 갈등을 고의적으로 유발시킨 그 행동은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었던 행동인지. 묻습니다.
이렇게 하면 너만 손해라고 꾸짖는 말에는
교육자가 학생보고 장사꾼같이 손해, 이익을 따질 수 있냐고까지 되묻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 1료 사감이 동료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큰 문제없이 해결이 됩니다.
극 중에 상의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수모만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되는데, 저 역시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강한 무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윤리. 도덕적 기준에서도 나름의 선이 있었고, 그런 것이 완전히 묵살되어 고의적으로 수모를 주고자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상의와 같은 분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이든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이요. 지키고자 하는 걸 넘어서, '썩었다.'라고 생각되는 분께는 진심이 아닌 예의를 차려야 하기 때문에 대면을 최소화만 하고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나이가 드니, 그런 사람도 있고 그러려니.. 하고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 대인관계가 원만한 성향이었기 때문에 별 티 안 나고 버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으며 상의에 대해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점은, 누구나 그런 성향을 가질 수 있지만.. 그동안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제 내면의 어떤 면이 그런 것에 강하게 서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께서 제게 해주셨던 저에 대한 이미지나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상의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가고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항상 동급생이지만, 저를 동생처럼 대해주거나 보살펴 주는 느낌이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그것도 싫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교우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예 없이 지냈던 것 같거든요. 오히려 삶의 큰 행복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특히 1,2세대의 긴 여정 끝에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3세대에게 큰 비중을 두지 못해서 인지, 저는 마지막에 상의가 커가면서 상의에 대해서 유독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신 것은 무슨 이유일까?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번 작가님께서 상의의 취향이나 감정에 대해 유독 자세히 설명해 주신 장이 있었는데, 그때 제 후기에서 제가 느끼는 저의 모습이 상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그때도 들었던 생각이, '혹시나 작가님도 어린 시절 상의 같으셨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으신 걸까?'
였고, 이번에도 작가님이 왜 상의에 대해 소설의 마무리 단계에서 일화로 한 장을 채우진 걸지 알아보고픈 마음에 작가님의 학창 시절을 검색했습니다.
작가님 역시 통영에서 태어나셔서 진주여고를 다니셨습니다.
책을 좋아하셨어서 학업 성적은 중간정도였다는 그런 말씀이 지난번에 과 이번에 나온 상의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독서와 시 쓰기 노트 이야기가 비슷하네요. 그런데 그 안에 제가 토지를 읽으며 박경리 작가님의 생애에 대해 여러 번 검색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게 있었습니다.
아래 짧은 글에 묘사된 모습은, 우리가 소설 속에서 본 임이네 모습같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감히 작가님의 모친을 임이네와 연결 지을 순 없지만, 이전에 작가님의 말씀 중 학비 때문에 아버지께 폭행을 당했다는 말씀을 빌어 임이네에게 티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었는데, 어머님의 이 일화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작은 일화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박경리 작가님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연결 짓고 그 긴 세월에서의 사람이 느끼는 감정들을 잘 옮겨놓을 수 있으셨던 것은 개인적인 삶 자체가 그런 아픔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삶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남편분의 이야기도 그렇고요,,!)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여 책상 밑에 소설책을 숨겨 놓고 읽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공부는 중간 정도 했다고 한다. 소박맞은 모친이 집이 가난해 바느질 등을 하여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궁색한 법이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수업료 때문에 몇 번씩 집에 쫓겨가야 했던 일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부끄러움이겠습니다만, 우연히 장롱 속에서 수업료의 천 배가 넘는 백 원짜리 지폐들을 접어서 넣은 전대를 발견했을 때의 슬픔, 돈을 보았노라 했을 때 나를 보던 어머니의 험악한 눈은 타인의 눈이었습니다.”(수필 ‘십이 년 만에’) 학창 시절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고 한다. 고등여학교 시절을 통해선 “마치 동굴 천장에 매달린 박쥐처럼” 외롭게 지냈다고 한다. 다른 학과목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박경리가 유일하게 좋아한 과목은 역사였다. 독서에 대해선 ‘야욕’을 부렸을 정도였고, 학교생활을 지탱해 준 유일한 벗은 시 쓰는 일이었다. 아궁이 앞에서, 때론 이불속에서 들킬까 노트를 감춰가며 매일매일 일기 같은 시를 썼다. “묶여 있다는 의식이 종이에 소리 없이 폭발했다고 나 할까”(‘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나남, 1994).
소설을 읽으면서는 주요하지 않은 내용도 제 눈에 잘 들어옵니다.
특히 당시 그 어려운 전쟁말기 시절,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의 생활도 피폐하기 없던 그 시절에도
식민지인 조선에서의 여고생 삶들이 생각보다 너무 호사스럽고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하기도 했고요. 상의도 대중목욕탕에서 피부염이 옮겨와서 방학 동안 매일 소금물로 목욕해서 나았다는 그런 말을 들으면, 목에 땟구정물이 가득했던 짐꾼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비해 상당히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는 딸들은 교육이나 재산 분할의 기회도 거의 받지 못한 걸로 알았지만, 이들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딸들의 직업이 아닌 혼처를 위해서 유학을 보내고, 재산을 떼어주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이든 시대상 아래에, 각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5부의 후기는 정말 각 장별로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요.
또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2개~3개 장을 이어서 마지막 20권의 후기는 총 2~3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한 장에서 이렇게 길어졌네요.
후기에 대한 댓글의 부담은 놓고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간단히 쓰고 싶다기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읽어만 주셔도 (또 그렇지 못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와우 드디어 20권을 들어서셨군요. 이제 끝이 보이네요.
잠시 저도 그때가 생각이 나는데 노트북님이 말씀하셨듯이 이게 끝이 맞나..싶은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마 그것이 박경리 선생님의 의도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은 어떤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닌 지속되는 것이라는 것. 어차피 역사속에서의 어떤 교훈을 준다기 보다는 그안의 삶들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들의 삶은 그후로도 그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요.
상의이야기가 그렇게 긴것에 대한 이유를 특별히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노트북님 말씀을 듣고 보니 뭔가 작가님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책 읽기에 급급해서 읽으면서 다른 자료를 찾아볼 생각은 못했었는데 노트북님이 작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신다는 얘기를 듣고 반성하게 됩니다. 작품은 결국 작가의 이야기고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히스토리가 필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찾아보지 않는 저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네요. 이래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은 자극이 되고 나를 깨워주는 소중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해요. ㅎ
상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다는 노트북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노트북님을 알아가는것 같습니다.
글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우리가 글을 많이 나눌수록 상대에 대한 테이터나 이미지가 형성이 되고 비록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 재미있습니다.
노트북님은 정의로운 분일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성품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원만함을 추구하시기에 그런 생각을 마구 드러내는 분은 아니라는 저만의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또한 그런 성향이지만 상의처럼 드러내놓고 선생님께 의견을 말할만큼의 배포는 없습니다. 언젠가 정의는 이루어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는것 같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학창시절이야기, 어머니의 그 눈빛.. 여리고 감성적인 박경리 선생님이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을지 짐작이 되고..하지만 그런 모진 마음, 슬픈 마음이 지금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읽을때 그 마음을 가늠해가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못 뵙지만 어쩐지 우리는 이미 만난것같은 느낌...저만 그런가요?^^ 글은 이래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