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에 읽고, 문체에 감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제까지 해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네요.
이 책의 주인공 요조에 대해서는 화가 날 정도로 공감이 되지 않는 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작가의 필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심각하고 퇴폐적이었다가 한 순간에 해학적으로 변하는 모드에서,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실격]에 이어서 실렸던 소설. [직소]에서도 발상의 전환부터 표현까지 이 분은 타고난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궁금해서 다양하게 서칭을 해 보았습니다. 역시.. 거의 소설이 아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고 느껴졌고, 실제 삶에서 엮였던 여인들의 이름은 발음까지 비슷한 이름으로 등장인물들을 설정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기가 실제는 17살 쯔음이었는데, 소설에서는 성인이 된 한참 후 (정신 병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로 나옵니다. 그냥 저의 짐작으로는, 작가는 이 소설의 끝에서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라는 말을 그를 알고 있던 마담이 하는 걸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실제로는 아니나,) 자신을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 사람으로 설정하여 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말을 우회적으로 전하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동료 작가들과 가족들이 마약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를 정신 병원에 수감시켰을 때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유독 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대면에서 솔직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다자이 오사무가 그때의 심경과 원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의 소설이 그의 삶 자체라고 단정 짓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겠지요~.
독자로서 궁금했던 작가의 삶이 그동안에 찾아보았던 어떤 작가보다도 자세하게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작가, 그리고 작가들의 작가였던 그의 위상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해 보고픈 마음에 연대기 별로 맞춰 보면서 유추하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단정으로 작가의 삶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작가가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향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에 대해 데미안, 파울로 코엘료, 다자이 오사무, 이상, 김소월 등 참.. 유명한 작가 중에는 왜 이렇게 자살을 한 사람들이 많을까?! 를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뇌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들 만이 이런 대작을 쓸 수 있는 건가?, 진정한 글은 웬만한 내면의 성찰로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네요~.
지난번 중간 소설에서 이상의 [날개]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지속적으로 이 책에서도 '죽음(자살)'을 '자유' 내지' '희(喜)'로 묘사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자살이 자유라는 생각 자체도 하염없이 뇌를 점령하는 중독 같은 증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번 그 로직에 빠지면 아마도 끝을 봐야 끝나지는 그런 문제 말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끝으로 갈수록 그의 폐인 생활. 특히 여자들과의 관계를 보며.. '쓰레기'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쓸 정도로 요조의 생활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인정하는 것은 설령 비난받을 일이어도 미화 없이 털어놓으며 가면을 쓰지 않으려고 했던 점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그런 솔직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유독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어떠한 일로 괴로워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일말의 양심이 살아 있고, 그 가책을 견디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그런 고뇌가 항상 있었다는 느낌을 받네요~.
그리고 가끔 아주 솔직히 진술하는 부분에서는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이 역시 남다르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어나서 처음 타향에 나온 이후 고향에서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고 했던 부분에서, '예컨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한테도 가족과 타인, 고향과 타향 사이에는 연기하는 쉬움과 어려움의 차이가 반드시 존재하지 않을까요? 배우가 제일 연기하기 어려운 곳은 고향의 극장이고, 더욱이 일가친척이 모두 늘어앉은 좁은 공간에서는 아무리 명배우라도 연기 같은 것은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이런 글에서 저는 오사무는 외향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혼자서 사람의 여러 모습들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거기서 인간 내면의 통찰을 매우 잘 얻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이와 같은 상황이 이해가 갈만한 경험들이 있겠지만, 그런 소중한 통찰을 모두 글로 잘 옮기는 것이 작가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강하게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 아아, 이 일군의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게 상처 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더 끔찍한 것이 있다. 욕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허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색과 욕,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보아도 부족한 그 무엇. 저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 세상의 밑바닥에는 경제만이 아닌 묘한 괴담 비슷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저는 40이 넘어서야 이렇게 무선운 면도 사람 내면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은데, 작가는 이 소설 이야기처럼 이유는 아직 모르겠으나, 매우 이른 나이에 이런 것까지 고민하게 되며 요조 (오사무)는 내성적인 사람이 더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포기한 과정을 기술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보다 8년여 전에 먼저 썼던 단편 소설 [직소]에서도 예수에 대해 일반인들이 의심을 품을 만한 이야기를 꼭 진짜 그러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일리가 있는 글을 썼다고 생각이 되고, 또한 여기서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넘긴 가롯 유다 역시..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소중했던 것을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내적 갈등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망가트려 버린 것처럼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런 문체와 느낌이 놀랍기도 하면서, 거의 인간 내면 통찰에 대해서는 알렝드 보통만큼 뛰어난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글여행님 말씀처럼 날씨가 너무나 좋았던 5월입니다.
저도 그 덕에 여러 가지 농사 체험도 해보고, 또 뒤늦게 아이가 졸라 대면서 캠핑 준비도 하고, 간단한 피칭과 휴식을 취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었는데, 새삼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님들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항상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글을 보면 책과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마도 책을 통해 느낀바가 노트북님 내면을 자극시킨 그무엇이 뭘까? 하고 나도 그부분을 찾아서 나는 무엇이 느껴지나 확인하고 싶어서일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과 함께 저자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 많이 인상적입니다.
좋은 계절에 자연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것 같습니다. 책과 더불어 자연이 주는 감동도 함께 느껴보는 요즘입니다.
노트북님 글을 보면서 몇달전 인간실격을 읽었던 기억을 소환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문체의 변화를 전 몰랐던 부분이네요. 다음에 읽을때 꼭 그부분을 인지하며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 책이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알고 있어서 좀더 몰입이 되었던 거 같아요. 실제로 수없이 자살 시도를 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저자의 심경에 다가가보려고 애쓰기도 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일단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 부분, 마약을 하고 여자를 난잡하게 만나는...그런 생활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소설의 이야기가 저자의 삶을 그렇게 쓴것은 아니니 섣불리 넘겨짚어서는 안되겠지만요.
그래도 소설속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깊은 내면의 얘기를 많이 했던걸로 기억해요. 실제의 오사무의 내면이었을거란 추측은 됩니다만 도저히 어린 학생이라는 입장에서의 내면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던거 같아요.
좋은 작가의 책은 재독이 필수일 듯합니다. 한번에 그들의 심오한 내면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저도 이 책을 재독할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