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 모두 잘 지내셨나요.
전 오늘 시어머니 병원에 다녀오려 합니다. 언덕진 곳을 지나다 넘어지셔서 골반과 대퇴부 언저리에 금이 가서 병원에 입원하셨거든요. 다행히 수술은 피했고 그대로 한달 가량을 꼼짝없이 누워계셔야한다고 하네요.
높은 연세에도 이제껏 큰일없이 지내오신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피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부모님들이 다치셨다는 연락을 받으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연세도 있으시니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그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오랜만에 단편을 읽었습니다.
단편은 호흡을 길게 잡지 않아도 되니 일단 마음의 부담이 적어서 한숨 쉬어가는 타이밍에 손이 가는 장르입니다.
그런데 단편이 오히려 그 맥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걸 매번 느낍니다.
강렬한 결말이면 생각 또한 명확해지지만 그도저도 아닌 결말에는 어떤 생각으로 마무리를 해야하나 난감할때가 있습니다. 이번 책이 그랬습니다.
책을 읽을전에 책 뒤쪽에 있는 해설집을 먼저 읽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대부분 책을 마치고 남은 시간에 해설을 훑어보게 되는데 때로는 해설을 먼저 보고 책을 볼껄 하는 후회를 할때가 있습니다. 이 책이 그랬어요.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진 더블린 사람들은 작가 조이스가 주변 사람들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처럼 쓴 단편 모음집인데 단편 하나를 마칠때마다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게 무언지 종잡을수가 없었어요.
특정한 감정이나 회한 혹은 감동을 주려는 의도인지 살펴보았지만 실패했거든요.
해설에 쓰여있는 설명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책이 왜그리 훌륭한지 조이스가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설득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전 좋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 제가 할 숙제같아서 말입니다. 전 이런 숙제가 많은게 좋습니다. 하나씩 정복해가는 재미라고 하면 말이 될까요. 뭐 그렇습니다. ㅎ
이전의 단편이 가지고 있는 감동이나 교훈적인 결말과 달리 이 안에서 내가 느낄수 있는 감정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나의 읽기가 잘못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즐겁게 끝까지 잘 읽었으니까요.
그 중에 가슴에 남은 소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슴 아픈 사건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임스 더피라는 은행의 출납원으로 일하는 독거남으로 사람들과 교류도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극장에서 딸과 함께 온 어느 여자(시니코 부인)를 만나 얘기를 하게 됩니다. 대화를 하면서 이 여자와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라 신경이 쓰여서 그집에 초대받기를 청합니다. 그 여자의 남편은 더피가 자신의 딸에 관심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할뿐이어서 그의 방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내와의 관계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그런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종종 그 여자와 더피의 만남은 지속됩니다. 더피가 그여자와 자신의 영혼을 담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거죠. 처음엔 여자가 그남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잘 해줍니다.
그러다 어느날 유독 감정적이 된 그녀가 더피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대는 모션을 취합니다. 깜짝 놀란 더피는 그녀와의 더이상 만남이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부인이 자신과의 대화를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꼈던겁니다. 더피는 그여자를 정말 영혼의 친구로 생각했던거죠.
시니코 부인과 마지막으로 만난 두 달 뒤에 쓴 글 가운데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성적 관계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남성 간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성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남녀 간의 우정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시니코 부인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끝날줄이야! 그녀의 사망 기사를 다 읽고 나닌 울화가 치밀었다. 또한 자기가 고이 간직하던 것을 그 여자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하니 또다시 울화치밀었다. 그 진부한 문구들, 그 부질없는 동정의 표현, 그리고 흔한 개죽음의 참상을 순화시켜 쓰도록 지시받은 기자의 조심스러운 문구들이 그의 비위에 거슬렸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타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역시 타락 시켰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비참하고, 악취나는 악의 불결한 행적을 보는 듯했다. 이 모습이 내 영혼의 반려자였단 말인가!...
한 여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는 그녀의 삶과 행복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치욕을, 부끄러운 죽음을 선고했던 것이다....
여자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이성간의 사랑을 느꼈나봅니다. 뭐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수 밖에 없겠죠.
그 나이의 남녀가 영혼의 대화만 하자고 하면 그 사실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으니까요.
하지만 더피는 성적 접촉이 없는 영혼의 친구를 원했고 그녀는 아니었습니다. 그게 그리 잘못된 일(물론 불륜이 되니 잘못된 일이 맞지만)이라기 보다 생각의 엇나감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피의 그녀에 대한 비난은 좀 너무했다 싶었습니다. 이기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이 상처를 더 받았을수 있지만 더피 역시 다른 부분에서 상처가 되었을겁니다. 그리고 여자가 그 문제로(그렇게 추측이 되니) 알코올 중독이 되고 술을 사러가다가 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 더피의 입장은 못지않은 상처로 남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수 있을까 싶습니다.
왜 그녀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나? 왜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했던가? 그는 자신의 도덕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엇나간 생각으로의 관계는 슬픈 결말로 끝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수많은 관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은 수없이 변하고 그래서 관계라는 것이 처음과 같은 생각이 지속된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관계에 너무 몰입하지 않고 적절한 공간과 시간을 두고 배려하며 이어가는 관계가 건강하게 잘 갈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친구도 지인도 그렇습니다. 아니 가족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내맘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 알 수도,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내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 있습니다. 다를수 밖에 없으니 그들의 행동에 타박을 해서는 안되는거겠죠.
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행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억매이지 않고 내 생각대로 묶으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관계의 건강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ㅎ

안녕하세요 딸기님
단편은 중단편에 비해 짧은 글이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거나 깨닫기가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쓰다 만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도무지 의도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을때도 많구요
그럼에도 가끔은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글속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거나 진한 감동을 받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구구절절 길게 설명하거나 보태지 않고 절제된 인물의 묘사나 대화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단편을 만나면 이런게 단편의 묘미이구나 싶을때가 있습니다.
딸기님의 소개해주신 단편의 내용은 남녀간의 우정 또는 사랑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남녀간의 우정이 가능하냐라는 질문은 답을 내기가 어려운 질문인것 같습니다.
한쪽이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감정을 품게 되면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기 일쑤이니까요
남녀간의 관계이든 친구간이든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다를때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 십상인것 같습니다.
딸기님이 말씀 하신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는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저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것이 부모 자식 사이일지라도 어쩌면 가까운 관계일 수록 더 서로를 위한 거리 두기가 꼭 필요하며 그것이 진정한 배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지만 끊이 없이 마음을 다잡고 되돌아 보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어머님께서 골절로 누워계신다니 여러모로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연세든 분들께는 골절자체 보다 후유증이 더 위험한 것이라
별탈 없이 잘 회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무탈한 한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후기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