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라미입니다.
대학교 동기들과 2박 3일로 강원도 인제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같은 교대 동기들이라 방학을 하는 기간이 비슷하여 여름, 겨울 방학기간 동안은 매번 만나서 여행을 갑니다.
이 기간만큼은 부인과 엄마 역할을 잠시 내려두고 친구들 속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홀가분합니다.
인제에 가보니 '내린천'이라고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새벽에 내린천 근처를 둘러보니 산과 나무가 강물에 투명하게 비치는 것이 물이 아주 맑았습니다.
또, 보통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여기 있는 내린천은 특이하게도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내린천을 쭉 따라가다보면 북한으로 향하게 되지요.
예전에 6.25 전쟁 때 퇴각하던 국군들이 남으로 내려가기 위해 내린천 물줄기를 따라가다 오히려 북으로 올라가게 되어 피해가 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박 3일간 친구들과 쉴 새 없이 떠들며 바다에 발도 담그고 설악 울산바위도 보고 속초 중앙시장, 물회 그리고 고성 아야진 해수욕장 막국수까지.. 정말 신나게 보냈네요.
그러느라.. 후기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번주에는 여자의 일생을 완독하였습니다.
아들 방학이라 함께 교보문고에 갔다가 저도 이 책을 골라잡았습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도 했고, 뭔가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 고른 책인데 정말 술술 잘 읽혀서 3일만에 다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완독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막 수도원을 나선 열일곱 살 잔느는 앞으로 펼쳐질 감미로운 행복을 가늠해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모가 수려한 젊은 귀족 쥘리앵을 만나고, 일사천리로 둘의 결혼이 성사된다. 푀플성에 둥지를 튼 그녀는, 남편의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기질과 자신을 대하는 냉랭한 태도에 맞닥뜨린다. 잔느는 성에서 고적한 일상을 보내던 중 이웃 백작 부인과 가까워지지만, 백작 부인과 쥘리앵의 불륜을 목격하고 나서 모든 기대와 애정을 외아들 폴에게 쏟는다.
19세기 귀족 여성이 주인공이라 지금과 시대상황이 매우 다르지만 저도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다보니 일정 부분 잔느의 입장에 공감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전반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19세기 귀족 남성인 모파상이 어떻게 이리도 여자의 심리와 감정 변화를 잘 묘사하고 독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잔느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도록 썼는지였습니다.
모파상에 대해 좀더 알아보니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직접 문학지도를 받았고 작품 초기에 에밀졸라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되었던 에밀졸라의 '테레즈라캥'이 떠올랐습니다. 테레즈라캥을 읽을 때에도 인물의 성격과 본성의 예리한 관찰을 통한 심리변화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잔느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성격 묘사와 잔느의 기질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참 재밌게 읽어내려가면서도 이야기 전체 진행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느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 중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시몽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은 지난 시대의 귀족으로서, 좀 기인이긴 했지만 선량한 사람이었다. 장 자크 루소의 열렬한 추종자인 그는 자연과 들판과 숲과 동물들에 대해 연인 같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중략)...
그의 큰 장점인 동시에 또 큰 약점은 바로 한없는 선량함이었다. 애무하고, 주고,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팔이 모자라는 듯한 선량함, 산만하고 저항할 줄 모르는 창조주의 선량함, 마치 의지의 신경이 마비되고, 정력에 결함이 있는 것 같은, 거의 악덕이라고 할 만한 선량함이었다.
잔느 아버지의 선량함과 자연주의적인 기질이 잔느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나서는 십대의 잔느가 자연에 대해 가지는 무한한 애정,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잔느의 무지가 깨쳐지길 바라는 아버지의 염원 등이 앞으로 펼쳐질 잔느의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아버지의 교육방침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지)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잔느는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 또한 아버지의 낭만적이고 악덕에 가까운 선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파상은 노르망디 지방의 성과 영지 주변의 자연을 묘사하는 데에도 탁월합니다. 마치 눈 앞에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자연 묘사, 사물 묘사, 날씨 묘사하는 부분은 대충 휘리릭 읽고 건너뛰었는데 요즈음에 소설을 읽어보니 이런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 부분, 집 안의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이 참으로 재밌게 느껴집니다.
그러자 자신의 침대를 알아보자, 처녀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왁스를 발라 반들거리는 새카만 떡갈나무제의 커다란 새 네 마리가 침대 네 귀퉁이를 받치는 모습이 마치 침대의 파수병들 같았다. 양 측면은 꽃과 과일을 조각한 넓은 화환 모양이었다. 코린트식 기둥머리가 붙어 있고, 세로로 가늘게 홈이 파인 기둥 네 개가 장미꽃에 둘러싸인 큐피드 상이 아로새겨진 코니스를 떠받치고 있었다.
(아니! 침대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쓴다고?)
먼저 밤의 달빛 아래 버터처럼 노랗게 보이는 넓은 잔디밭이 맞은 편에 펼쳐져 있었다.... (중략) 넓은 풀밭 끝자락에 있는 작은 잡목 숲이 이 영지의 경계를 이루었는데, 고목이 된 느룹나무 다섯 줄이 측면에서 영지를 폭풍우로부터 막아 주고 있었다. 그 고목들은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해풍에 비틀리고, 잘리고, 뜯기고, 또 지붕처럼 경사지게 깎여 있었다.
지방 귀족의 딸인 잔느는 푀플이라는 성에 살게 되는데 그녀가 사랑하는 푀플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의 방에서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 숲, 나무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잔느의 외아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수차례 빚을 지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푀플성을 팔게 됩니다. 잔느는 자신의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담겨있는 푀플성을 하나하나 둘러보게 되는데 참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잔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고뇌에 잠겨 어머니의 산책로를 저녁때까지 혼자서 거닐었다. 지평선에, 나무들에, 플라타너스 아래 벌레 먹은 벤치에, 자신의 눈과 마음속에 박힌 것처럼 너무나 익숙한 그 모든 사물에, 작은 숲에, 그녀가 자주 와서 앉았던, 그리고 쥘리앵이 죽던 그 무서운 날 드 푸르빌 백작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황야 앞 비탈에, 자기가 자주 몸을 기댔던 윗부분이 잘려 나간 느릅나무에, 그리고 친숙한 그 정원의 모든 것에 잔느는 절망적인 흐느낌의 이별을 고했다.
여자의 일생을 읽어보면 모파상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잔느의 인생의 굴곡을 따라가며 기뻤다가 슬펐다가 마지막엔 잔느의 일생이 참으로 허무하고 고독하구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늙은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고 빚 상환을 요구하는 편지만 보내던 자신의 아들 폴이 낳은 아기를 하녀가 데리고 옵니다. 포대기에 쌓인 아기의 모습을 보며 늙고 생기없이 죽어가던 잔느는 다시 무한한 감동을 느낍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인생의 기쁜 순간들,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면 그 때 그 때 충분히 느껴야하고, 그 기억으로 고독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폭우에 피해 없길 바라고 이번주에는 기한을 지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미 드림.
안녕하세요 라미님
대학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셨네요
저도 가족들과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늘 갈망하고 있는데
다들 사는데 바쁘다 보니 여의치가 않네요
인제는 자작나무 숲만 다녀왔는데
다음에는 라미님이 다녀오신곳도 가봐야 겠습니다.
이책의 주제와는 벗어나는 이야기 이지만
결혼 당일에야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 의해서) 그리고 남편은 바람을 피고
아들은 사업에 실패해서 집을 팔아야 하고 거기에다 아들이 낳은 갓난아기도 맡아서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잔느가 감동을 느꼈다는 설정은 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지나친 남성입장의 시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ㅎㅎㅎ
아마 그 시대는 그리 불편감 없이 받아 들였겠지요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잔느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은것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라미님의 후기글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침대에 관한 묘사나 집을 떠나기전 집을 둘러보는 잔느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 모두 참 흥미롭네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구나 수긍이 되었습니다.
저도 요새 책을 읽으며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상상하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묘사 장면은 다 읽고 나서 속으로 미쳤다 외친적도 있구요 ㅎㅎㅎ
새삼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있구나 싶을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후기글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