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간연습 - 조정래
아이들 방학과 동시에 짧은 국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물난리가 난 직후라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았습니다만 너무 덥더라구요 😂요새 수영에 재미를 붙이 남매라 물놀이 위주로 다녀 새카맣게 탔지만, 이런게 또 여름 휴가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다녀와서 목감기와 열로 인해 며칠 고생했습니다.😭
코로나 때 이후로 소염진통제에 대해 알러지가 생기는 바람에 열이 나면 답이 없더라구요~
알찬 여름 휴가도 좋지만 무리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요양코스로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이번주에 읽은 책은 조정래의 인간연습이라는 장편소설입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겪으면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남으로 보내진 간첩, 두명의 전향수 박동건과, 윤혁이라는 인물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박동건은 일찍감치 결혼을 하여 아내와 슬하의 자식들을 두고 있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박동건은 북으로 가버리고 아내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연좌제는 남아 그의 가족은 물론 친인척들까지 못살게 굴었고, 아들은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막노동꾼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딸은 이혼을 당하여 자살을 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삶이 무너지는 시간을 견뎌야했지만, 그가 전향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내는 한줄기 희망을 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향은 온전히 그의 의지가 아니었고 떡공이들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기절한 상태에서 어쩔수 없이 강제로 손도장을 찍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 었기 때문에 아내가 품은 희망을 지켜줄 수 없었고, 가족들은 그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긴 감옥생활 끝에 강제 전향하여 출소를 하게 되지만 사상의 조국으로 떠받들었던 소련이 무너지고, 자랑스러워했던 조국의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사회주의 사상의 몰락을 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막내아들과 아내만 참석한 박동건의 장례식은 쓸쓸하게 치뤄집니다.
자신이 찬양하던 사회주의 사상을 따르다 자신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나 사상, 이념 등과 같이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부분을 극단적으로 의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박동건의 삶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위대한 업적이나, 개혁 같은 일을 위해서는 이런 무모한 자세도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작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온전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이상이 될 수 있겠지만, 박동건이라는 인물은 그 보다는 원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를 쫓고 있었나 봅니다.
그의 삶에 잠시 머물렀던 아내라는 인물이 더 대단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남편 없이 그 전쟁통에 3명의 자식을 키워야 했고, 전쟁이 끝나도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모진 삶을 이겨내야 했던 그녀의 삶이 불쌍했습니다.
박동건의 장례식에서 조차 무심하고 매정했지만,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삶을 포기 하지 않고 살아왔음이, 같이 활동했던 윤혁조차 그녀의 모습을 인정 할수 밖에 없고, 그의 유골을 아무대나 뿌리지 않고 납골당에 모셔주는 이들에 고마움을 느낄 수 밖에 없듯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고 느껴졌습니다.
"박동지, 이만하면 되지 않았소. 그만 훌훌 털고 떠나가시오. 박동지 말마따나 우린 헛살았는지도 모르겠소"
박동건 마지막 가는 길 윤혁이 마음속으로 그에게 남긴 말이었습니다.
같은 동지였고, 같은 사상을 따랐던 윤혁에게 그가 남긴 죽음은 많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윤혁의 삶은 박동건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30년간의 감옥생활을 했고, 윤혁은 그곳에서 얻은 어지럼병으로 인해 어쩔수 없긴 했지만 스스로 전향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남한에 가족은 없었지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경희와 기준이라는 남매와 친해지게 되면서 삶의 희망을 찾습니다.
"친할아버지 대하듯 감겨오고 의지하는 것을 느끼며, 내가 오래 살아야지, 하는 생각까지 불현듯 하고는 했었다"
윤혁은 며칠에 한번씩 남매와 저녁을 나눠먹으며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에게 감겨오는 남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의 아픈 현실에 에너지를 주고 동기부여가 됩니다.
감옥에서 출소 후 보호관찰 생활을 하는데, 경찰과의 마찰도 부드럽게 넘길 줄 아는 모습과, 속마음을 잘 숨기고 비위를 맞춰주는 모습을 보고 윤혁은 조금 유연한 사람인 듯 싶었습니다. 아마 박동건이었다면 급발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의든 타이든 간에 대처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거요. 마르크스주의란 기본적으로 밥 먹는 철학인데도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해 결국은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하아!"
"예, 맞는 말씀입니다. 김 형사의 말을 부정 할 수도, 묵살 할 수도 없었다."
윤혁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 먼저 감옥에서 출소하여 잊지 않고 면회도 와주고, 윤혁이 출소하자 번역 일거리를 가져다 주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강민규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강민규가 번역을 위해 가져다 준 책은 '호치민 평전'을 번역하면서 프랑스와 미국과 싸워 기적같은 승리를 얻은 베트남이었지만, 결국에는 부패와 타락으로 물들어 나라가 망할지경으로 썩어간 그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의 몰락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결국 각국의 공산당원이란 칼이라는 유익한 도구를 잘못 든 도둑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이란 본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사실 저는 사회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소설이지만 남북이라는 우리 역사를 통해, 간첩이라는 인물의 모습으로 들여다 보니 어렵지 않게 궁금증을 갖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쁘게만 생각했던 사상이기도 했는데, 어떤 사상이든 인간을 통해 그 본질이 더럽혀 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도 알수 있었고, 인간의 본성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었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윤혁은 강민규를 통해서 비전향자들을 북송한다는 소식과 최고권자가 정상회담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런 정치적 변화의 시점을 기회 삼아 윤혁 본인의 일생이 담긴 수기를 쓰게 됩니다. 그의 수기는 대박이 나게 되고, 그의 책을 통해 6.25전쟁 당시 간호사였던 여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당시 인민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떤 장교가 자신보다 사병들의 병 치료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고 국군 장교부터 치료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과는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사회주의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인민군을 따라 나선 간호사였습니다.
결국 북으로 넘어가기 전에 잡혀 10년의 감옥생활 후 보육원을 운영중이고, 후에 이 여인의 초대에 윤혁은 경희, 기준 남매를 데리고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 보육원에서 윤혁은 행복한 생애 마지막을 보냅니다.
이번 소설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었고,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짧은 후기 글에 못담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정립되지 않은 토론형식의 의문점들이 많아 정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니 회원님들이 토지에 열광했던 그 이유를 저만의 방법으로 조금 알 것도 같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바탕으로 되어 있어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늦은 후기 글에 죄송한 마음을 담아 보내면서 좋은 밤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가다쿵님^^
조정래님의 소설을 읽으셨네요
대학시절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당시 지식인들이 왜 사회주의를 먼저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태백산맥을 읽고 그 당시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를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계급제도가 남아 있던 사회배경을 생각하면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회주의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소설속의 두 인물이 비슷한듯 하지만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의 신념대로 선택한 것이라
어떤 선택을 했든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두 시대의 아픔이고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니까요
일제시대는 조선인과 일본의 대결 구도라고 하면
6.25는 같은 민족끼리 이념적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시절이라
어떤 면에서는 더 아프게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짧은 여행을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 이렇다할 휴가 계획이 없어서 머뭇 거리다가 여름이 다 가 버릴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고 나니 아이들도 집 떠나면 고생이다 라는 것을 깨우치더라구요 ㅎㅎㅎ
조정래님의 작품 후기라 반가운 마음에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