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조카의 아기가 백일이 되어 가족끼리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보는 아기가 너무 신기하고 너무 예뻤습니다.
작년 친정 조카도 그랬었고 올해 시댁에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양쪽 가정에 아이 소리가 나니 모임이 한결 텐션이 높아진 느낌이었어요.
안아보고 싶었지만 저도 어릴때 아이 감기 걸릴까봐 사람 손 많이 타는것이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서 눈으로만 봤습니다.
우리나라 아이 출생률이 세계 최저라는 소식이 걱정스러웠는데 올해 소폭 증가했다고 하는 뉴스를 얼마전 봤습니다.
정말 젊은이들이 출산을 하고자하는 마음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이 낳아 키우는 일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는 일이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보고 산적이 없었던 터라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무척 새롭고 생경하기도 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키워야한다는 생각과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함께 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쪼록 현명한 선택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개인의 삶에 있어서 아이가 주는 세상은 또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삶이 엄청 풍성해지는 느낌이거든요.
지난주 뉴욕 삼부작의 세번째 소설을 마쳤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런 독서였습니다.
무작정 줄거리에 심취해서 읽었던 나의 태도가 그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읽으면서 소설에서 느끼는 충만함이 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폴 오스터는 이전의 소설의 틀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시도중에서도 이 책에서는 메타인지의 영역을 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전에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한것 같습니다.
메타라는 말이 저도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좀 더 익숙해지려 합니다. 우리의 생각의 영역을 한껏 넓혀주는 분야라 생각하니까요. 메타라는 개념은 ~넘어서.. 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우리가 인지하는 영역의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존재가 상대에게 이입이 되면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설정을 통해 나를 알아가게 되는 구도로 이루어집니다.
세번째 소설 잠겨있는 방은 이런 내용입니다.
팬쇼의 어릴적 친구인 서술자는 그의 부인인 소피 팬쇼의 편지를 한 통 받습니다.
그 친구가 유서를 남기고 6개월째 행방불명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그가 살아있는지조차 알수 없는 상황에서 소피는 그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방문해줄것을 요청합니다.
소피는 팬쇼가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남긴 글들을 출판해줄것을 부탁합니다.
얼떨결에 승락을 한 서술자는 그의 책을 출판하고 그러면서 가까워진 소피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갖게 됩니다.(남편이 행방불명인데 결혼이 성립되는게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팬쇼의 죽음에 대한 의문, 그의 자리를 차지한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으면서 그의 행방을 쫓기로 합니다.
그러다 편지 한통을 받습니다. 팬쇼였습니다. 자신을 쫓지 말라는 말, 그럴 경우 내가 당신을 죽이겠다는 말, 자신 대신 소피와 잘 살아달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멈출수가 없습니다. 결국 어느 잠겨진 방안에 숨어있는 팬쇼을 찾아가게 되고 문을 가운데 두고 둘은 대화하게 되지만 무엇하나 확실한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채 소설은 끝이 납니다.
'팬쇼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내가 그를 더는 찾으려고 하지 않았더니, 그가 전에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었다. 모든 과정이 거꾸로 되고 만 셈이었다. 그를 찾으려고 애쓰면서 몇 달을 보낸 뒤, 나는 마치 내가 찾아내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팬쇼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에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위의 글은 팬쇼를 찾는 과정에서 서술자가 느낀 스스로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긴 방은 결국 한 인물이 격는 세가지 자아로 표현되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유리의 도시에서의 퀸은 스스로를 오스터로 착각하고 스틸맨을 감시하고
유령들에서는 블루가 블랙을 감시하며 블랙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되며
잠긴 방에서는 서술자(이름이 안나옴)가 친구 팬쇼의 삶에 흡수되는 그의 삶을 대리로 살게되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탐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 자아를 작가는 메타 인지 형식으로 소설 속에서 여러 자아를 보여주고 생각해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게는 이런 시도가 참 반가웠습니다. 내 안의 모르던 자아를 상대가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뭔가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가끔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길 원하는지도 몰라, 또는 다른 사람 안에 들어가 그 마음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지도 모르지... 그래서 배우들의 다른 역할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이 소설을 메타인지적 소설이라고 말을 합니다.
전 메타 인지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메타가 들어가는 말은 뭔가 덜 이해되는 어렴풋하게만 인지를 했었죠.
하지만 이렇게 소설에서 접하고 보니 한결 그 의미가 가벼이 다가온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소설에 비현실적인 내용이 들어가는게 싫었어요. 그럼 집중이 안되고 현실에서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않았었죠. 그런데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얘기에 열광한다고 느끼는 때가 왔어요. 왜 나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손을 대지 않는 영역이 늘어나는게 속상했죠. 그런 마음이 쌓였는지 언제부터인가 영화도 액션 영화(이전에는 보지않던)도 보고 범죄 영화도 보고..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되는게 무척 재미있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소설에서도 비현실적인 얘기에도 뭔가 메시지가 있을거야 하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내가 몰랐던 우주가 거기에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런 열린 마음이 나의 삶을 더 넓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면서 이제는 안해보고 못해본 영역에 시도를 해보는 일에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색다른 소설 형식의 시도와 새로운 내용을 접할때 오는 가벼운 충격은 내 머리를 깨우는 느낌이 들어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다음 책을 정할때는 내가 좋아하는 영역에 또 손이 가는건 막기가 좀 어렵긴 합니다. ㅋ
다음책은 집에 있던 책으로 정했습니다.
존 버거의 소설인데 이 소설도 아마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던게 분명합니다. 처음 부분을 읽고 있는데 새로이 다가오니 말입니다.
다음주에도 좋은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ㅎ
딸기님! 안녕하세요~^^
오늘 소식은 읽으며 너무 설레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어느새 7세가 되어 버리니. .다시 밖에서 어린 아기들만 봐도 마음이 너무 뭉클하고 설레입니다.
아기를 바라볼때면,, '지금 내가 저만한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또 다시 너무 행복해 하고 빠져들겠지..?!' 생각하면서도,
너무 늦은 나이를 생각하며 누르고 있습니다.
둘째도 정말 낳고 싶었는데, 당시에 제가 계속 아팠었고, 남편은 그래도 제가 회사를 다니기를 바랬었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들 하나만 잘 키우는게 맞는 것 같다. 하며 저를 단념시켰습니다. 물론.. 남편도 아기가 너무 이쁘니, 그래도 하나 더 낳아볼까 하는 생각도 중간 중간 하면서, 그럴려면 몸도 다시 만들고 해야한느데, 언제 하지 하는 생각도 하며 저희는 아이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더 행복할지, 힘들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상상만으로 웃음이 나왔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
" 개인의 삶에 있어서 아이가 주는 세상은 또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삶이 엄청 풍성해지는 느낌이거든요."
딸기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온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멀리서 간접 경험만 본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상당히 고되고 오랜기간 자신을 포기해야하는 각오를 요한다 생각하고 지레 겁먹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막상 당사자들은 힘들지만, 그 안에서 오는 정서적 풍요로움과 행복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을텐데요,,! 그래서 일찍부터 아이를 단념하는 부부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아이는 키워보니 간절히 원하는 집에 태어나는 것이 맞겠단 생각도 들고요. 또 그들을 제가 다 모르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니 사소한 말이라도 조심스러워 뜻을 존중하는 말만 하는 것 같습니다.
딸기님의 후기에서 독서의 충만함을 한껏 느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도 제가 생각한 저외진짜 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체성에 대해서도 오히려 40 이후에 제 2의 사춘기를 겪는 듯한 내면의 방황을 겪었었고요. 그래서 인지 이제는 이런 주제의 책들이 제게도 흥미롭게 다가 옵니다.
살아갈수록 저의 인생과 아이의 삶을 위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삶에서 메타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는 것 같고요.
작가님은 자신의 그런 메타 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진정으로 발견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느껴보셨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으셨던 거겠지요. 얼마나 .. 깊은 정신적 고민을 하셨던 분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참 세상엔 너무나 멋진 분들이 많네요.
이 책만큼은 정말 많이 끌립니다.
이 책은 제가 살아보고 싶은대로 살아봤다고 생각한 어느날, 왜인지 갑자기 떠오를 것 같은 그런 책입니다.
요즘은 딸기님의 후기에서 독서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져 좋은 자극을 많이 받습니다.
연휴 마무리 잘 하시고요..^^..!
또 다시 즐거운 한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