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지난주 에리히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이어, 이번엔 정 반대(?)의 책. 막스 밀러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앞부분에 30여 페이지의 역자의 해제가 있고, 이어서 제1부 문제 제기. 2부 금욕주의적 개신교의 작업 윤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주에 1부 문제 제기에서 2장 자본주의 정신 (~p.115)까지 읽었습니다.
이전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 만큼 한 문장 한 문장 밀도 높아 더디게 읽힐 책은 아니지만, 막스 베버의 논문 출간 당시에 너무 많은 논쟁이 있었던 이유 때문인지 베버가 논쟁의 상대들을 의식해서 해명 같은 부연 설명을 계속 붙여서 인지, 글을 읽을 때 흐름이 많이 끊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분량의 부연 설명을 Skip 하기에는 설명이 너무 아까운 느낌이라 그럴 수가 없었네요.
책의 구성 측면에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딱 한 줄로도 표현될 정도로 명확하지만,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책 역시도 그런 것 까지도 모두 소중할 정도로 성의 있는 글입니다.
막스 베버는 1864~1920년, 에리히 프롬은 1900~1980년 사람으로서,
에리히 프롬이 그 주옥같은 글들을 쓰기 전에 막스 베버의 책을 모두 읽어보았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했던 점은, 에리히 프롬의 그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그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정 반대이지만, 내용은 거의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 자신은 무교이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나 의심이 갈 정도로 종교개혁이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성공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파헤치기 위해 길지 않은 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인물답게, 에리히 프롬이 말하고자 하는 그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준 깊은 불안과 고독을 설명하는 책과 배경설명이 너무나도 일치합니다.
다른 점들이 있다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는 칼뱅주의와 청교도를 거의 묶어서 설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는 명확히 16C 칼뱅주의와 17C 청교도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에리히 프롬은 칼뱅주의와 청교도의 그 변화된 양상을 그냥 하나의 칼뱅주의로 보고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에리히 프롬의 입장에서는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면, 막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에 영향을 준 것은 칼뱅주의가 아니고, 그 이후 나타난 청교도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전책보다 더 명확히 구분 지어 설명합니다.
어찌 되었든 같은 시기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나온 결론이 정 반대였다는 것이 너무나 흥미로웠는데요,
에리히 프롬은 종교개혁으로 언뜻 인간은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실은 더 큰 정신적 속박과 두려움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원죄를 씌우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구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전지전능한 신에게 종속되는 피학적 인간이 되는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잘 설명합니다.
막스 베버 책에서도 16C 칼뱅주의에서는 1)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 2) 구원은 태초부터 정해진 불변의 사실, 3) 고해제도 폐지(죄 사함 기회 박탈)를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에 대한 불안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17C 청교도에 들어와서는 결국 그토록 불분명했던 그 '구원'에 대해서, 결국 내세에서의 성공이 '구원'의 증거였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매우 금욕적이고 합리적인 삶의 조직화로 1) 체계적인 노동, 2) 부의 추구 3) 덕 있는 행실을 추구하며 자신이 이 땅에서 '구원받은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신자들의 목표가 됩니다.
이 부분 까지는 거의 사실을 다루는 내용이라 그런지 두 책의 내용과 관점이 거의 동일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17C의 청교도인들의 '구원받은 자' 증명을 위한 철저한 금욕주의를 에리히 프롬은 '인간 우울증의 시작'이라 말하고, 막스 베버는 전통 자본주의가 아닌, 우리가 아는 이 화려한 근대 자본주의를 완성할 수 있는 '자본주의 정신'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버는 가톨릭교도, 루터교도, 청교도의 교리를 분석했지만 심리학의 기법을 동원하는 것을 배제했고, 국민성이나 유전적 요인, 선천적 영향, 발달사적인 법칙들을 적용하지 않은 반면,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 성격(즉, 심리 요인)을 연구한 학자답게 이 부분을 고찰하다 보니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연구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성공 요인'을 찾고자 했고,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그 고통과 불안의 근본 뿌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물론 논쟁이 길어지니 막스 베버는 자신은 '자본주의의 성공 요인'을 찾다가 종교개혁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종교 개혁이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하고자 한 것이라고 글에 썼지만,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막스 베버는 그 '자본주의의 진짜 성공 요인'을 궁금해했다가 연구하며 종교 개혁에 꽂힌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것 까지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요.)
책에서 청교도가 어떻게 근대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증명하는 내용들이 계속 반복되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에 여러 주 들 중 처음부터 경제 식민지화를 목표로 건설된 지역들 보다도, 청교도인들의 종교적 설파 목적으로 건설된 지역들(도시들)이 훨씬 근대 자본주의의 성과가 뛰어났다는 점이었습니다.
베버가 말하는 그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청교도인들이 지속적으로 실천했던 '삶을 더 체계적으로 루틴화 하여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분석에 대한 과정은 심리학에 기반을 둔 에리히 프롬의 책이 훨씬 재미있고 취향에 맞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책으로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그 '불안'이 꼭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었는지?,
그 불안이 인간의 삶과 인류 발전에 있어서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것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더 중요한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삶이 곧 루틴화된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이 없고, 여유와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삶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어느 시점 전까지는 치열하게 달려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주의입니다. 제 아들도 자신이 열정을 다하고 노력하는 분야에서는 성취를 크게 느껴보기도 당연히 바라게 됩니다. 그런 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제가 시도하고 있는 '삶의 루틴화' 취지에 너무 잘 맞는 내용이어서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 책의 완독 시점엔 또 무얼 얻어갈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읽은 것에서 이것 하나만 제대로 제 것으로 만들어도 남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자기 개발서에서 추천하는 루틴보다 더 보편적인 데이터 검증으로 신뢰가 갔네요. 한 개인의 성공 비결이 아닌, 근대 자본주의를 가장 잘 발전시킨 근본 원인이라고 하니까요,,!
이번주는 핼러윈 캠핑을 와서 아이친구네 부모님들과 어제까지 신나게 파티를 했습니다.
행복한 주말이었네요..! ㅎㅎ
목요일은 동생과 조카, 저와 아들 넷이서 화담숲 단풍구경을 갔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것이 참 좋더라고요,,ㅎㅎ
회원님들! 꼭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만끽 하시길 바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 저는 지난주 후기 후에 바로 [소년이 온다.]를 주문했는데, 금요일 도착 예정에서 딜레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완독을 못했지만, 약속대로 [소년이 온다]가 도착하면 그 책으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약속한 [토지]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이건 거의 논문인데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런 책은 책 내용을 파악하는데 급급한 저인지라 이렇게 두 책을 비교 분석하시는 노트북님의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책을 소화하는 능력이 탁월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니까요.
덕분에 이런 책을 읽을때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몰랐던 종교 개혁이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수 있는 시간이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종교 개혁이 인간의 정신적 속박과 두려움을 만들어냈다는 애기며, 청교도에서 내세에서의 성공이 구원의 증거이며 그안에 부의 축적도 들어있었다는 점이 제게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이런 책을 전 즐겨읽지 않아서 이런 리뷰를읽으며 독서 욕구를 끌어올리려 하는데 노트북님이 그런 역할이 해주고 계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덕분에 에리히 프롬과 막스 베버의 주장이 대비되는 부분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큰 수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의 글을 다양하게 읽을수 있는 이 공간이 문득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독서 욕구를 끌어올리는 좋은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소년이 온다 책을 아직 못 받으셨군요. 조급하지 않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토지야 언제고 시작할수있으니 그 시간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뭘 읽어도 행복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새벽에 노트북님의 글을 만나니 더욱 좋습니다. 좋은 독서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