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요일입니다. 한주 한주가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 읽기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게 이상하기 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은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 하는 것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알고 받아 들이는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두시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합니다.
대화는 글로 생각을 나누는 것과 는 다르게 즉각적이라 더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생생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언젠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책을 쓴 작가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굉장히 주목받고 인정 받는 작가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라고 거론 되고 있다고 하니 수상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괜히 노벨 문학상을 기대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써볼까 합니다.
이책을 읽고 제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는 네가지 입니다.
상실, 돌봄(양육, 모성애), 사랑, 실존 이것 입니다.
상실
주인공인 라일라는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하는게 더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존재를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버려졌다는 사실은 라일라를 수치심 가지고 살아가게 합니다.
본인의 잘못으로 버려진것이 아닌데 왜 라일라는 수치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부모역할을 해주는 달이라는 인물을 만나서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지만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라일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라일라가 나중에 다른 사람의 아이를 훔칠 생각을 하는 것역시 그 영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다른 주인공 존 에임스 목사 역시 젊은 시절 부인과 사별하고 아들 마저 떠나보내고
혼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로 나옵니다.
목사라는 직업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상실 그리고 부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역시 어린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큰 상실을 경험 한적이 있어 그로 인해 사회적 편견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것은 성인이 되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도 메꿔 지지 않는 감정이라 가끔은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라일라가 가진 수치심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돌봄(양육,모성애)
달은 라일라가 어린시절 머물던 곳에서 밤잠을 해결하며 라일라를 돌본적이있는 어느밤 라일라가 현관 계단 밑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고 라일라를 품에 안고 보살피기로 합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던 라일라를 달은 밤낮으로 먹이고 씻기고 생명을 이어 나가도록 보살펴 줍니다.
"그녀는 한 아이를 보살폈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를 훔쳤다. 아마도 죽음으로 부터. 외로움으로 부터"
달은 라일라를 유괴했다는 도덕적인 옳고 그름 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공황시대에 극심한 빈곤속에서 자신의 먹을거리도 충분하지 않을때 핏줄도 아닌 생명을 거두는 모습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연민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달 역시도 가족이 없이 외로운 상태에서 라일라를 보살피며 삶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떠돌아 다니는 형편임에도 라일라에게 보통의 가정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경험 시켜 주기 위해
한 집에서 일년정도 일을 해주며 라일라가 학교에 다니고 글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줍니다
"우린 떠돌이가 아니야. 집시도 아니고, 미개한 인디언도 아니야" 라고 자랑스레 얘기할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라일라가
달에게 "그럼 우린 뭐야?"라고 묻자 달은 "우린 그냥 사람이지"라고 답한다.
우린 그냥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달이었기에 교육에 필요성을 느끼고
라일라가 글을 배울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달과 라일라는 모녀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훗날 달이 라일라의 친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달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고 늘 달을 그리워 하고
심지어 달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일때 사용했던 칼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달이 없는 상황에서도 라일라는 달과 대화를 하고 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모습을 보이며
달이 준 칼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서도 달이 라일라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
달이 사람을 죽이게 되면서 감옥에 가고 달은 라일라가 가 찾지 못하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 한 것으로 나옵니다.
달이 떠나고 혼자 남겨진 라일라는 사창가에서 매춘부로 생활을 하다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라일라는 에임스 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많은것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서로 외롭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임스는 라일라가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물질적,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그것으로 편안함을 느끼기고 하지만 가끔 반감을 갖지고 합니다.
라일라는 에임스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 처럼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에임스는 한결같이 라일라에게 친절한 모습과 따뜻한 말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며
라일라로 하여금 떠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합니다.
에임스 역시 라일라로 인해 가족이 생기게 되고 라일라의 임신으로 또다른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들의 행복이 길지 않다는 것은 라일라 에임스 다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그들의 사랑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절절한 장면은 없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둘의 마음은 그 어떤 로맨스 소설 보다 낭만적이었습니다.
달이 라일라에게 준 사랑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에임스의 사랑으로 변해가는 라일라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존 입니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난 최근에 그저 세상의 어떤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을 뿐이예요"
라일라가 에임스와 처음 만났을때 라일라가 에임스에 한 말입니다.
"들판에 버려진 아이가 있어요. 그냥 내다 버린 거죠. 그리고 하나님이 아이를 안아 들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애초에 왜 누군가 아이를 그런 곳에 버리게 놔뒀을까요?
이 질문 역시 라일라가 결혼을 하고 나서 에임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라일라는 실존에 관해서 조금 안다.
그것이 그녀가 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졌던 라일라에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임스는 목사이니 종교적으로 라일라에게 설명해 주려고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라일라에게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결혼 내내 라일라는 에임스에게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과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런 라일라를 에임스는 매력적으로 느끼고 그 질문에 대해 뜬 구름 잡는 설명이 아니라
라일라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진솔해 보였습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소설 임에도 종교의 한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저에게는 흥미로웠습니다.
네가 태어난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주지 않았고,
네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기지도 않았다.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지르지 않았고,
포대기로 감싸주지도 않았다.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너를 동정하여 이렇게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네가 태어난 날 너를 반기는 사람이 없어 너는 들판에 버려진 것이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고
내가 너에게 말했다.
너는 피투성이더라도 살아라
라일라가 애착을 가지고 여러번 읽었던 성경 에스겔의 한구절 입니다.
에스겔이 슬프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에 라일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흥미로우니까요. 세상의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이야기 해주니까요"
챕터가 나뉘어져 있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져 있어 중심을 잡고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곳곳에 쓰여진 아름다운 문장들이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생각할 것들을 던져 주고 있어 후기를 쓰면서도 의미를 깨닫기도 하고
의미를 계속 곱씹게 만들었던 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뒷표지에 실린 미국 유명 일간지에 실린 이 작품에 대한 평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 - 선데이 타임스
삶의 의미에 대한 강렬한 탐구이자, 사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희망에 대한 감동적이고 믿기 힘든 이야기 - 타임스
칼뱅주의 교리의 언어와 관념으로 구현된 아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메릴린 로빈슨은 어떤 작가와도 다른다 - 뉴욕리뷰오브북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 이번에는 새로운 회원이 오셔서 좀더 풍성한 한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운 여름 모두 건강 관리 잘 하시고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소설을 읽으신것 같네요. 치악산님^^
노벨상으로 거론되는 작가분이라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
좋은 소설로 여러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다니 그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너무 궁금하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도 언젠가 그런 시간을 가질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지 말입니다. ㅎ
제시해주신 여러 키워드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심도있는 키워드들이고 그 어느것 하나만으로도 생각할 여지가 많은데 그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소설안에 넣은 작가의 능력에 놀랍기만 합니다.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 되셨을것 같습니다.
전 그 중에서 상실에 관심이 갑니다.
치악산님에게 있었던 아버지의 부재, 노트북님이 말씀해주신 친구 아버지의 부재가 실제로 상실감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지 않은 나만의 약점이라는 것이 있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나에게는 그 상실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스스로 아픔이 되는 그런 상실감이요.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 크기가 가늠이 안되는 감정이지만 그래서 그 크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수도 있을것같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그래서 그때는 컸었던 구멍이 지금은 많이 작아져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라일라가 가졌을 수치심으로 그의 삶이 뜻하는 바대로 가지 않았을것을 상상할수 있습니다.
전 오은영 박사님의 프로그램을 한동안 많이 보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보기도 합니다.
메워지지 않는 구멍같은거라는 치악산님의 말씀이 그래서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살면서 우리는 참 많은 감정에 직면하죠.
제가 감성적이라서 그런지 그런 감정들에 취약한 편입니다. 이제는 좀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고 싶은데 그게 참 안돼네요. 그래도 이제는 감정에 너무 휩쓸리지 않으려합니다. 그럴수록 삶이 참 힘들어지더라구요.
적어도 내 스스로 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않으려합니다.
이게 저의 인생 2막에서 하고 싶은 나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치악산님 덕분에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ㅎ
치악산님,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싱그러운 꽃 이름 같은 제목에 그렇지 못한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도 다시 찾아내기도 하면서 살아갈 테지만
'특별한 관계'는 부여되는 의미에 따라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일라에게선 엄마라는 인물이, 에임스 목사에게는 잃어버린 가족들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란, 누군가에게는 궁금증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움 또는 외로움의 모습으로 나타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질문들에 라일라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에임스의 진솔한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저에게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관계나,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기고 하고요^^
성경 구절을 해석 할 줄은 모르지만, 라일라가 그렇게 궁금해 하던 질문에 에스겔 구절은 큰 위안이 되는 글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면면들이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마음을 둘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엉뚱한 생각과
종교에 입문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힘들 때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조금 어려운 책이라 느껴지는데 치악산님 덕분에 살짝 엿보고 갑니다^^
치악산님이 써 주신 소설 라일라를
저도 함께 읽은 기분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2시간 다른 분들과
독서토론을 하셨다니,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을까 무척 궁금해 집니다.
저도 독서 토론을 해본적이 있어서
흥미있는 주제의 이야기들이 오갈때의
짜릿함을 조금은 알겠거든요.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은 친밀감이
들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께는 경외감이 드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하고
계신 치악산님이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다시 하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아직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이곳 온라인 독서 후기모임으로도
충분한것 같거든요.^^
그리고 치악산님의 아버지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안고 성장하셨다는 이야기에
저도 마음이 아프지만, 누구보다
잘 성장하셔서 지금 잘 살고 계시니까
아버지가 있는 사람보다도 더 대단한것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가슴속에
품고 사는것 보다 밖으로 이야기하면서
가볍게 털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은 미성년인때는 많을 수
있지만 성년이 된 후로는 이제는 모두가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책임지는
동등한 선상에 있으니까요.
매번 재미있는 책 소개로 즐거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악산님~^^ 안녕하세요! 저 역시 한 주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알고 받아 들이는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두시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합니다."
듣기만 해도 오프라인 독서 모임이 얼마나 즐거우실지 상상이 갑니다.!
저 역시 언젠가 회원님들을 만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이전엔 그럴만한 계기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가 일을 멈춘 상태에서 그런 날이 가능할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꼭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후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감사한 것은 읽지 않은 책도 정말 진솔한 감정과 설명으로 전해 주셔서 마치 새로운 책 몇 권을 그 주에 함께 읽은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정말 덕분에 다양한 책, 많은 작가분들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난주 후기에서도 느꼈지만, 작가님께서 얼마나 삶에 대해, 종교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신 분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마치 여자 헤르만헤세 같은 느낌이네요. 헤르만헤세도 삶과 종교에 대해 무수히 고민하고 질문을 하는 흔적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거든요. 저는 요즘 소설가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아무나가 쓸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 해주신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곁에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 어린 시절 가장 소중한 사람의 부재, 그 상실로 인해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가족이 생겨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것이라고요..
이전에 친했던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그 친구는 당시에 학원에서 수학교사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고등학생때부터 쭉 다니덕 학원이라 원장 선생님이 잘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 원장선생님에 대한 곤혹스러운 감정을 제게 털어 놓는데, 제가 상황을 들어보니 거의 임금 착취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 부당함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 않는지, 아니면.. 왜 그만두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자신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원장 선생님께서 자신만이 아는 자기의 약점을 말하며 꼼짝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약점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토록 착하고 순진한 친구를 무엇으로 그 원장님이 꼼짝 못하게 하는지요..
그래서 제발 말해보라고,, 그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제 눈을 쳐다보며 우물 쭈물 조금 뜸을 들이더니..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ㅜ 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고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서 도와주시고.. 엄마가 방앗간을 해서 자기와 동생을 키우셨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방앗간은 잘 되어서 일하시는 이모님들도 많으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너무 가슴이 아팠네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처를 안고 살았다는 것이요.
그런데 저는 너무 의아했던 것이, 왜 그 친구가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냥 아버지가 안계시니까, 자기가 힘이 없을거라고 생각한다는(그럴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고, 맘 같아서는 함께 학원으로 찾아가 따져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친구가 그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 친구가 그 부분에 대해 의기소침해 한다는 느낌을 몇 번 받았습니다.
한참 친해진 이후에도 그걸 몰랐다는 것도 저는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그것은 절대 너의 약점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그렇게 성실히 공부해서 대학을 잘 가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잘 사는 것은 오히려 너의 자랑이고 니가 더 잘한다는 뜻인거지 그것으로 인해 니가 절대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너무 안타까워서 두 손으로 손을 꼭 잡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제 말이 그렇게 까지 와 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지켜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었네요.
자신의 잘못이 전혀 아닌 그런 상실로 인해 사람이 받는 상처가 자존감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그때를 돌이켜 보니 알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일을 겪으신 어린시절의 치악사님을 안아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네요..!
돌봄이 떠오르셨던 달의 이야기도 마음이 뭉클해 집니다.
순간 감정 이입을 해보면, 그것은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제가 만약 달이었더라도,, 라일라를 발견한다면 먹이고 씻기고 하며 같이 키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만큼 달의 마음이 어떠할지 이해가 갔습니다. 달이 라일라에게 "우린 그냥 사람이지" 라고 말하는 부분은 특히 마음이 뭉클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제가 혹시나 이 당연한것을 잊었던 적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면 불쾌하고 반감이 들었던 장면도 생각나지만, 혹시나 제가 그러지 못하였던 적은 있지 않나,, 저부터 되돌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다 나누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네요.
감동적인 후기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