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이번 주는 제가 좋아하는 막스 베버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이전에 좋아하던 '현대 지성' 책들을 작년 기준, 내년(올해)부터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는데, 토지 이후에 이상하게 이런 책들이 많이 끌리지 않습니다. 참 희한하지요..^^..! 이번 주는 특히나.. 기존에 사놓은 책들 중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했었는데, 마음은 법정 스님의 책이었는데, 고민하다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등장하신 희후님의 책을 보고 저도 법정 스님 책이 더 생각났었는데, 글여행님 후기를 보니.. 저도 그런 책을 읽고 같은 시기에 나누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최근에 진심으로 정치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경제에 대해, 그런 것들의 연결 고리로 결국 제 아이의 육아에 대해 생각이 참 많아졌었습니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제가 항상 생각해 왔던 것.
지금의 상태로는 더더욱 양극화와 분열이 심해지고, 한 나라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고 악의 축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를 그렇게 규정하여 자신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공고히 하는 방식이 현재의 정치에서 표를 쟁취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화합'을 도모하기는 너무나 어렵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표를 얻어야만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려니 당연히 상대가 안 되는 이유를 부각시키고, 결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두가 극으로 치닫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극우, 아니면 극좌의 각국 대표들을 볼 수가 있네요.
세계 1,2차 대전 이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이러한 현상에 많이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가장 빨리 쟁취한 프랑스의 정치사가 이러한 시기 이후 우리에게 다가올 세상은 어떠할지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시민 혁명은 프랑스보다 조금 먼저 영국에서도 두 차례(청교도 혁명, 명예혁명이) 일어났지만, 저의 머릿속에는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 하면 프랑스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레지스땅스의 나라 프랑스. 아무래도 영국은 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선택했지만, 프랑스는 바로 공화국을 수립해서 인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혁명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했던 프랑스에서는 그 이후에도 좌, 우의 대립이 심했고 점점 극좌, 극우의 양극화 대치에서 결국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중도 보수의 마크롱이었습니다. 정치적 지지 기반이 없던 신생 정당 앙마르슈를 창당하고 바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스타트업을 지지하며 포퓰리즘을 멀리하는 성향. 지극히 현실 적이면서도 중도를 내세우는 마크롱이 세세히 말할 수 없지만 저의 코드에 맞는 느낌이어서 먼 나라의 지도자이지만 좋아했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길었던 프랑스에서의 결과가 결국 현대 민주주의의 정치의 흐름 (보편적 사람의 심리)의 결과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왠지 향후에는 전 세계 적으로 중도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대선을 다시 치렀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콘셉트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좌도 우도 아닌 중도를 외친 마크롱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중도를 외쳐서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개인적인 매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때 저의 생각은 이 후보가 (제가 예상한 세계의 트렌드가 맞다면,) 트렌드는 정말 잘 읽은 것 같고 흐름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러한 패러다임을 등에 업고 결국 (나중에라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는 그 자신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 좌우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집중해서 글을 쓰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곧 전 세계의 정치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을 공유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결국은 그 길이 맞겠지만, 그것을 등에 업고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어떤 정치인이 그것을 해낼지는 아직 전혀 감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은 잘 모르는 그 누군가가 해낼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당시에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폐단과 몰락을 눈으로 봤던 세상에서 그것을 금기시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보수(극우)에 대한 지지가 우세하였지만, 점점 눈을 뜬 지식인들이라면 '진보'를 지지한다는 인식이 한동안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이 진보 지지자들의 자부심 중 하나로 느껴졌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눈을 뜬 사람은 편견 없이 실리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중도를 지향하는 것이 생각의 유행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세계의 정치 현상에 관심이 많아졌고, 앞으로도 보수와 진보등 진영을 가리지 않고 양쪽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픽하게 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책에 나오는 막스 베버의 일생에 대해 또 읽게 되었습니다.
매번 읽어도, 같은 내용이어도 막스 베버의 취향과 삶은 공감이 많이 갑니다.
베버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경제학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학자였는데, 경제학을 다룰 때는 단지 경제 이론만 다루어서는 안 되고, 경제사회학과 경제사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 관점 자체가 저의 코드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베버의 논문과 저서는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욕심이 나게 하는 작가나 책들을 접할 때면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
베버는 모범적인 종교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고, 부유한 정치인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지적, 문화적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 인한 엄마의 삶에 초점을 두어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한동안 엄마가 원하시는 도시 삶에 대한 고민으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마저도 베버의 그 감정에 많이 공감이 갔었습니다.)
이토록 여러면으로 애착이 가는 베버의 이 책 역시 제가 지향하는 바를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려주어 좋았습니다.
베버에 의하면 국가는 역사적으로 국가보다 앞서 존재했던 정치적 결사체들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다시 말해 합법적으로 여겨지는 강제력이라는 수단 위에 세워진,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관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도자가 극단적이면 위험한 것이겠지요.)
정치는 정치 조직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조직들 내에서 권력 배분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며, 그 행위를 하는 지도자들을 금권주의적 방식으로 충원하지 않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확실함 수입의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2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1) 정치를 위해 살아가는 것. 2) 정치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
베버는 정치의 책무는 진정한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가가 책임 윤리를 바탕으로 시대의 소명을 따라 사람들을 조직해 국가에 부여된 강제력으로 과제들을 이루어 내는 데 있다고 합니다.(정치를 위해 살아가는 정치인) 그리고 훌륭한 정치가가 출현하지 않아 국가가 관료들이나 아마추어의 지배를 받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너무 공감이 갔네요. 그것은 너무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학문의 책무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적 영감과 열정으로 모든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규명해 내는 데 있기 때문에, 정파적 이해관계를 따라 학문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데 그것 또한 너무 와닿았습니다.
학문의 책무는 특정한 견해를 제시하고 합리화하는 데 있지 않고, 여러 견해가 지닌 함의와 결과를 정파적 편견 없이 제시함으로써,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돕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과 달리 학문은 언제나 과도기적인 것, 즐 시간이 지나면 낡고 진부해질 수밖에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하는데, 저는 학자로서 이런 겸허한 마인드를 높이 삽니다. 언제나 자신의 것이 낡은 것이 될 수 있고, 틀린 이론이 될 수 있다는 것, 진리를 탐구하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전제로 하는 학자가 참 멋이 있네요. 나이가 들 수록,, "I might be wrong." 이 말이 자주 생각납니다.
이 책은 베버가 했던 두 번의 강연을 엮어 책으로 만든 것인데, 당시의 사회 배경을 설명하던 중
당시는 중세 봉건사회의 특징이었던 신학적 사상을 와해시키고 인간 중심의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본주의 사상"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계명 주의 운동은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고, 여전히 남아 있는 봉건 질서를 타파해 사회를 개혁하는데 목적을 두었다고 설명합니다. 베버의 강연에서 계몽주의는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서 했던 말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중세 = 신 vs 근대 = 인간 vs 현대 = AI (AI 앞에 무력한 인간.)
이 떠올랐습니다.
근대에 들어 그토록 무한한 진보를 믿었던 인간의 힘에 대해 지금은 의문을 품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AI의 능력 앞에 무릎 꿇는 인간이 연상됩니다. 저의 연상이기만 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앞으로 AI와 로봇의 시대에 인간은 진정으로 무엇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요즘 자주 듭니다. 미래가 이렇게 예측 불가능 하니, 오히려 그냥 후회 없이 가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 하게 되는 것 같고요.
책에서 다루려는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제 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근대 사회에서 당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하던 계층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성직자, 문인, 궁정 귀족, 도시 귀족, 법률가들을 이야기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불로소득으로 살 수 있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뜻하지 않게 (크진 않지만..) 불로 소득으로 살고 있습니다. 물론 남편은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요,,
제가 이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는 깨닫지 못했을 것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진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을 제공하지 않고도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진정으로 그렇게 삶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치나 소비를 크게 하지 않는 남편도, 적게 쓰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좀 더 젊을 때 누려 보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책은 다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의 해제가 40여 페이지에 걸쳐서 잘 되어 있어 다 읽은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앞에 제가 읽은 책과 책 뒤의 해제가 내용이 정말 비슷해서, 해제를 끝까지 다 읽으니 이 책을 이어서 읽게 될지 선뜻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완독은 아니지만, 다음 주는 다른 책으로 찾아뵐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다쿵님께서 오시길 기다렸는데, 오실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렴 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7월이네요,,!
습한 더위가 시작해서 낮에는 너무 힘든 느낌입니다.
7,8월 더위를 독서와 함께 잘 이겨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이 공간에 들어와서 내가 읽지 않는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된건 노트북님의 공이 큰것같습니다. ㅎ
경제 분야도 그렇고 이런 정치가의 책을 통해서 저도 알아야하는데..하고 생각만 하던 것들을 노트북님이 제새해주셔서 저의 독서 생활의 앞길을 터주시는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또 기쁩니다.
서로의 책을 공유하는 것은 그래서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정말 긍정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혼자 읽었다면 몇 페이지 읽다 덮었을 책을 이리 설명해주시니 아마도 다음에 그런 책을 읽게 된다면 아마 더 많은 진도가 나갈것 같습니다. ㅋ
저도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이제는 그만 양극화를 멈추고 중도가 가는 것이 맞지 싶은데 우리의 바램대로 될지는 의문이 듭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양극화를 젊은 세대도 답습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미국의 정치 상황 또한 너무 극단적으로 쏠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베버가 말하는 계몽주의.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고, 여전히 남아 있는 봉건 질서를 타파해 사회를 개혁하는데 목적을 두었다고 설명합니다.
계몽주의가 어쩌면 우리가 믿을만한 정치적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도를 말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힘이라는 것이 이제는 AI 앞에서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니 정말 앞으로의 미래라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욕심없이 살아야하는것이 맞는것이 아닐까 하는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이런 책을 이렇게 설명해주니 지루하지 않게 접근할수 있을것 같고 이해도도 높아지는것 같습니다.
오늘도 너무 유익한 얘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트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