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망각일기 - 세라망구소
이번주는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서 에어컨을 잠시 끄고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내일 한 차례 비가 온다더니 하루 종일 흐리기만 하더라구요^^
조만간 비가 오고 다시 후덥지근해 지기 전에 한껏 즐기며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그렇기에 마음 한켠에 자기만의 책을 집필해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초등학교때는 일기를 써서 상도 받고,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말도 이따금 들었었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정작 스스로 책읽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기에 발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서야 독서모임을 통해 한걸음 내딛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대단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긴합니다 😁
이번 주에 읽은 책은 '망각일기'라는 책으로 25년 동안 일기를 써온 저자가 그 일기를 토대로 쓴 것으로, '일기'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했고,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써왔다는 사실이 인상 깊기도 하여 골라 보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 되고, 멋진 글귀나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있으면 체크를 하는데, '망각일기'를 읽는 내내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자꾸 자꾸 멈추게 되는 부분들이 참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보니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 체크된 부분이 가장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전부, 잊혀져가는 기억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조차 기록으로 남기려 애썼던 저자는 결혼과 출산 등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얽매어 있던 시간과 기억, 일기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적은 책입니다.
저자는 일기가 없는 삶을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써 일기쓰기를 지속해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일기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뭔가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을 막기 위해 동원한 방어기제였다"
'방어기제' 라는 단어로 표현한 그 자체로 그녀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친구와 방문한 어느 행사에서 한 그림을 보고 느낀 벅찬 감정을 기록했고, 이때부터 자기 기록을 하나의 일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틀비틀 서성이면서, 비몽사몽간에,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는 한해 목표가 일기쓰기와 다이어트일 만큼 수많은 시도를 해왔었는데, 망각의 동물로 살면서 그 어떤 끄적거림의 행위 없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기억한다는 건 참 힘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구절을 읽고 있으니 딱 제 상황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력이 굉장히 안좋은 저는 지인들과 추억 소환을 할 때면 '그때 나도 함께 였는지',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를 빠지지 않고 물어봐야 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출산을 해서 그런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녀의 일기쓰기의 '이유'가 더 크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건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다 보면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사이에 벌어진 모든 일을 차차 잊어버리게 된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이, 떨어지는 기억력에 맞서기 위해,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지만, 이 구절을 읽으니 사진 속에는 그때 느꼈던 감정, 기분 등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기록이라는 방법이 기억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시간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면서도, 단지 반복적인 행위 자체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결국엔 아무 소용없는 짓이 되버리지 않을까, 20년을 고민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글은 문체와 형식을 품고 있고, 좋은 글에서는 그런 것이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쓴 적 없는 문장을 쓰고 싶어"
일기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욕심은 그녀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글은 문체와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다는 점, 아무도 쓴 적 없는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강박적이게 느낄 정도로 일기를 써왔지만,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녀가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그녀는 우리가 아는 전쟁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밤낮으로 수유하고 잠을 자고 아이를 케어하는 그 시간 속에서 거의 반 수면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내 몸, 내 삶은 내 아이의 삶을 이루는 풍경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세상이다"
육아라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시간의 연속성에 저항하던 그녀는, 아이가 살아가는 연속적인 배경이 되고, 아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위안이 되는 주체가 됨을 느낍니다. 이후 그녀의 일기는 온전히 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차게 되고, 시간은 그저 시간을 살아내고 있을 뿐인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어느 정도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더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질적으로 늙었다'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은 무엇인가를 곱씹으며, 일기에 기록할 시간과 삶이 바닥나 버린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의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질적으로 늙었다'라는 것은 삶의 성숙을 의미 하지 않을까 짐작하면서,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부모의 삶을 저 또한 살고 있기에 너무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삶의 형태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사실, 그에 따라 우리가 다양한 층위의 충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있는듯하다"
'다양한 층위의 충만감'이란 우리 각자가 속한 삶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색이 지질층처럼 다르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지내던 시간에서 벗어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아이가 주는 행복의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하나의 삶을 살면서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을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는 것도, 나의 죽음의 순간을 느끼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없어진 후의 시간이 이어질 것임을 아는 것도. 자신이 했던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데 모든 시간을 써버린다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으로 뒤바뀐지 오래였고, 영원이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잠시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 말합니다.
"섬광이 번쩍인다ㅡ그러면 나는 사라지지만, 보라, 끝없이 이어지는 빛의 세계를 통과하는 몸들의 울렁임을"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일기쓰기에 관해 딱 저자와 같이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내가 진정으로 일기를 써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처럼 과거의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고, 매년 일기쓰기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와 비슷한 또 다른 강박에서 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내가 기억하고 싶은 특별한 일들의 모음집이라면 그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년에도 같은 목표를 적으며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시간과 기록, 기억과 관련하여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에 한번쯤 읽어보는 것 추천드립니다 😊
가다쿵님^^!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일기를 이렇게 꾸준히 쓰시던 분이 일기쓰기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참 신선하네요,, ㅎㅎ
저도 어느덧 회사를 그만 둔지 벌써 일 년 반이 훨씬 넘습니다. 올해 말이면 만 이 년이 되는데, 이 시간은 아마 6살 이후의 제 삶에서 최장으로 밀도 없이 살아온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게, 저는 그런 삶을 계획하거나 갈구한 것도 아니었고, 막상 그런 삶을 살기 전에는 그렇게 살면 왠지 성장하거나 깨닫는것도 많지 않을거란 막연한 착각을 했었습니다.
막상 경험해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유가 주는 효과가 크더라고요. 무엇이든 얽메이지 않게 되니, 저의 사고도 직장 다닐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넓어진 느낌입니다.
회사를 다닐때는 저를 잘 아는 아주 친한 동료나 지인들은 제가 처음부터 남들과 다르게(?) 사고가 뚫려있고 생각이 여유로웠다고 해서 신기했었습니다. 제 삶이 항상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것도 꿈 꿀 수 있을만큼 여유로운거라고 동료들이 말해서 저는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줄 알았다고 했었거든요. 남들도 다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렇게 막혀있다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것도 아주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그만두고 나서야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도 이런 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의 틀은 넓게 하고 싶다고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정말로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해 지는구나,,! 를 느꼈으니까요.
아마도 이 책의 저자도 이십년이 넘는 일관된 삶을 벗어 덧졌을 때 오는 그 자유가 너무나 신선하니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ㅎㅎ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저까지 행복한 느낌이 드네요..ㅎㅎ
가다쿵님 덕에 또 이렇게 신선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부지런 하신거 아닌가요,,?!
매번 감탄이 되네요.
고맙습니다.
노트북 드림.
안녕하세요 가다쿵님^^
기억일기가 아니라 망각 일기라니 모순 되는 두 단어를 조합해 놓으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됩니다. 일기로 기록은 해 놓지만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됩니다.
저는 매년 새해면 일기까지는 아니고 다이어리라도 열심히 채워야지 결심을 하지만
한 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을 기록하는게 저에게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몇달 안쓴 다이어리만 몇권이 됩니다.
이제는 그것도 내 모습이구나 그냥 받아들입니다. ㅎㅎㅎ
저와는 달리 무엇이든 꾸준히 기록을 하고 남기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저는 한해 동안 읽은 책목록 작성하는 것도 끝까지 해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책 프로필과 날짜 정도 기록하는 것도 버릇이 되지 않으니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래도 올해는 이렇게 꾸준히 후기를 남기고 있어
의미있는 기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
또한 하나의 삶을 살면서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을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종종 제가 주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끌려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은 편이라
늘 지나고 나서 후회를 하곤 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어 그냥 흘러 가버린 시간들이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것 역시도 내가 택한 방법이라면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을 요즘에는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가다쿵님의 말씀 처럼 매일 매일을 기록하는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일상의 모음집이라는 말이 딱 좋네요^^
알찬 후기글 잘 읽고 갑니다.
다음 한주도 편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아니??! 이럴 수가요.. ㅎㅎ
정말 일찍 남기셨네요,,! ㅎㅎ
가다쿵님,! 저는 매번 말씀 드리지만, 가다쿵님께서 책을 안읽으셨다고 자꾸 말씀 하시지만 믿기지가 않습니다..^^..!
(초등학교때, 일기 상.. ㅎㅎ 저도 많이 받았었네요^^;
저도 그 당시 일기를 정말 성의있게 썼었거든요. ㅎㅎ
엄마가 항상 신기해 하셨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백일장이나 교내 대회에서도 입상을 종종 했었는데, 신기하게 고등학교때부터는 아예 글을 잘 안썼던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ㅎㅎ
글을 더 읽고 나누고 싶은데, 저는 4:30에 나가야 하거든요..ㅠㅠ
그래서.. 글은 다녀와서 읽고 댓글을 남기겠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흔적이라도 남겨 봅니다,,!
제 후기도 다녀와서 써야 할 것 같아요,,! 다녀와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