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ㅎㅎ
드디어 이 책의 완독 후기를 쓰네요..!
320여 페이지의 무난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참 오래 읽은 책입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제게는 이 책 또한 생각의 전환이나, 모호하지만 분명 느껴지는 감정의 출처를 알게 해 준 뜻깊은 책입니다.
하지만, 굳이.. 0.1의 공백을 두고 평점 4.9점이라고 쓰고 싶었던 이유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느껴져서 분석에 대한 전달을 넘어 확신에 찬 비판이 독자인 제게 오히려 반감을 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책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인간이 능동적 자유를 맘껏 누리며 경제활동도 함께 영위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고독과 불안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며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결국 '민주적 사회주의'를 제시한 부분에서 모호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가 우리가 아는 그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어떤 것을 위해서라도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로 독재 정권의 선동과 주입도 경계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식으로나 아직은 그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저의 심리적 경계를 맘껏 무너트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니와, 또한 그가 제시한 그 이상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실행 방안은 전혀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그 형태를 짐작만 할 뿐 구체적으로 그리기 어려웠던 것이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결론을 보며 에리히프롬이 저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전에 제가 조직 생활을 할 때,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꿈꿨고, (노력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모두가(혹은 조직의 성격을 바꿀 만큼 많은 포션의 사람들이) 그 가치를 추구해야 이룰 수 있는 경지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모두에게 필요한 이상적인 조건들이지만, 그것을 위해 그렇게 한마음이 되어 합심할 수 있는 것이 꼭 사회는 아니라는 것이 또 제가 인정하고 알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항상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제가 생각하는 그 이상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는 이런 해결책까지 꿈꾸고 있었다는 것에서 (감히)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아무리 사회학 연구의 대가시지만, 학자라서 현실을 너무 모르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아주 조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러한 두 가지 이유로 평점을 5.0으로 쓰기가 뭔가 아쉬워 4.9를 적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이고, 역시 제 아들도 인생에서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이런 책을 빨리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편협함'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인지 이렇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책,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 책과 에리히 프롬의 다른 책들을 더 많이 읽고 싶기도 하지만 더불어 (이미 이 책을 읽었다면,) 이어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을 꼽아 봤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종교와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측면, 특히 인간에게 주는 고통적인 측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면 막스 베버는 종교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입니다.
제가 편협함을 경계한다고 해서 저만의 주관이 없길 바라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만을 접하고 감명받아 주관적이 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에 더욱더 막스 베버의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읽고 싶은 책은 너무나 많네요,,! 개인적으로 [토지] 대 장정을 정말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런 대작을 읽기 전에 기초토양을 더 충실히 하고픈 욕구가 생깁니다. 책을 좀 더 놓치지 않고 잘 느끼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것이 있거든요. 소설 읽는 재미를 흠뻑 느끼려면 철학과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요즘 자주 듭니다. 더더더 책 읽는 기쁨에 빠져들고 싶네요,,^^:!
후기를 쓰기로 맘먹으면 이 책 한 권으로도 10편의 후기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밀도 높은 책이지만, 역시 완독 한 후에도 이 책의 핵심은 지난주 후기에 썼던 5장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이미 각 장에 대해 언급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제6장 나치즘의 심리와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제6장. 나치즘의 심리.
이 장에서는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즘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당시 하류 중산층이 가졌던 편협함, 권위주의적인 특징을 들어 설명합니다. 하류 중산층이 왜 자본주의와 함께 몰락했었는지, 거기서 오는 무력괌과 불안감이 피학적 성향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드렸던 5장의 내용에서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극과 극의 형태인 가학적/피학적 성향은 결국 자신의 결정, 무력감에 대한 방어기제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가학적 기조를 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 결점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필요한 그 공생적 존재에게 더 가압적으로 대하면서 그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유형이고, 피학적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그 공생적 존재에 흡수되고 싶어 하는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공통점은 양쪽 모두 가학/피학 그 대상이 없어지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히틀러 자신이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가학적/피학적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그 짙은 색채에 같은 성향을 가진 하류 중산층이 쉽게 선동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가진 피학적 성향으로 나치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굳이 나치=독일 국가라는 인식에서 국가에서 배제되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견디려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더 나아가 독일인이 가장 우월하고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그 가학적 성향에 환호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잊는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이 그러하여 더더욱 이 책에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의 정치는 보수. 진보로 나뉘는데 그간 제가 생각했던 양쪽 진영의 지지자들도 굳이 따지면, 그 안에서 각각 두 개 층, 또는 세 개의 층으로 나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개 층이라고 말한다면,
양쪽 지지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래층과 그 진영의 리더 격인 소수의 상위층이 존재한다고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정치에 조금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양쪽 진영 모두 최상위 층의 소수의 성향은 같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도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대다수를 이루는 각 진영의 지지자들은 약간은 희생자, 선동당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세 개 층으로 나눈다고 한다면,
(진영에 대한 지지자들을 계층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네요;)
가장 하위 계층, 중간 계층, 상위 계층으로 나누고 가장 하위 계층은 말 그대로 1차원적인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는 지지층, 보수라면 자신의 이익이나 지위 유지를 위해 보수적인 관념을 지지하는 분들, 진보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결과의 형평을 위해 표를 던지는 분들, 그리고 그 위가 서로 반대 진영의 그 1차원적인 분들의 행태를 그 진영 지지자들 전체의 모습처럼 일반화해서 비판하는 2차원적인 분들, 그리고 마지막 상위 계층은 위의 두 개 층에서와 동일한 집단. 즉, 자신들의 진영의 유지를 위해서 추종자들을 선동(?) 하는 계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떠한 집단이든 처음에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결국 힘(권력)을 가져야 그 뜻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그 힘과 직결되는 표를 얻기 위해 서로 선동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진행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처음엔 참으로 순수한 의도였으나, 결국 끝까지 가서 권력을 잡는 최상위 계층은 겉보기에 너무나 순수해 보일지라도 실제 그 순수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회의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실 어느 진영이나 서로가 자신들이 선동당하는 것을 모르고, 그리고 대부분은 생각이 있는(?) 중간 단계의 지지자인데, 서로가 그 반대 진영의 1차원적인 지지자들의 행태를 전체인양 비판하며 서로가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적으로 열을 내며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특히 정치적인 논의에 열의를 나타내는 분들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또는 그것에 일상이 상당히 노출되어 있는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한쪽에만 노출되기 때문에 편협함이 더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약점은 이런 회의적인 입장으로 어느 진영에 대한 것이나 깊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정치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회의적이지만 그 자체를 비판할 지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되는데, 결국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위와 같은 생각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하류중산층 중 권위주의인 사람들의 그 우월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책에서는 어느 나라나 하류 중산층의 특성 자체가 굉장히 사고가 편협하고 권위와 근검절약에 대한 존경심, 엄격한 금욕주의가 팽배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제가 생각하는 가슴 아픈 기성세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류 중산층의 현실입니다. 근검절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는 부류보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기가 더 힘듭니다. 역사에 되풀이되는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평생을 열심히 살고 금욕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나락거지가 되는 역풍을 가장 잘 맞는 것이 이 하류 중산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류 중산층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조바심이 납니다. 혹시나 제 미래가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제게도 항상 공존합니다. 어찌 되었든 책에서는 그와 같은 하류 중산층의 고통과 열등감, 무력감, 불안감 등이 독일의 예에서는 나치의 사상에 쉽게 선동되어 피학적으로 도피처를 찾고 협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그래서 이렇게 격변의 시대에 고통과 불안, 현실을 부정하는 그들의 열망에 호소하여 새로운 세력이 등판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이 장에서는 인간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안에 있는 그 내재된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근대 사회의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순응'에 대한 교육을 취하면서 우리가 우리 안의 창의성을 누르는 교육을 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희생'을 미화하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희생을 의식적으로 강요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것 자체가 불안에 대한 발버둥에서 오기 때문에, 각자가 추구하는 그 창의력을 살리며 경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 상황을 이상적으로 그리는데, 대부분의 설명은 참 와닿고 재미있었지만, 결국 에리히 프롬이 추구하는 것이 매우 이상적인 사회였다는 것에서 평점 0.1을 빼는 실망과 같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교육에 대한 의미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는데, 저는 항상 아이에게 제약을 주는 교육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까지가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제약인지가 또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좀 힘을 얻었는데, 교육의 목적 자체가 순응인지, 아니면 개인의 자율과 창의성인지에 따라서 같은 과정이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생각한 바로는, 예를 들어 똑같이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친다 해도, 그 읽고 쓸 수 있기까지는 아이에게 제약을 동반한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그 목적이 어떠한 지식을 되풀이되듯 달달 외우는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창의성을 가두는 교육이 되는 것이고, 그 목적이 아이의 지식에 대한 무한한 욕구를 채워줄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수단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목적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글 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에게 언제까지 아이의 성향을 존중해서 산에만 다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여기서 자체적으로 해석하며 조금 힘을 얻었습니다. ^^: 책을 읽어주는 것은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스스로 읽을 줄 안다면 더 무한한 세상이 아이에게 열릴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그 한글을 깨치는 과정이 쉽지 않네요. ㅎㅎ
이렇게 사유와 통찰을 주는 책에서 겨우 한글을 떠올렸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제 현실이 그러니 또 그런 생각도 들었었네요..! ^^::!
너무나 재밌는 책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문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을 정도로 밀도 있는 책이어서, 특별히 어느 한 부분만 선택하는 것이 힘들어, 옮기지 못하고 그냥 생각나는 줄거리로 옮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값진 책입니다.
오늘은 판교 교보문고로 가서 막스 베버의 책과 토지 책을 사 올 예정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행복한 날이네요!!
사실 저는 지금 책 읽는 순서가 참 고민입니다.
막스 베버 책도 좋고, 한강 작가님의 책도 좋고, 토지도 좋습니다.
다 너무나 읽고 싶은 책이어서 어느 하나라도 회원님들께서 원하시면 그 책을 먼저 함께 읽어도 됩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먼저 시작하길 원하시면 저는 e-book을 구매하려고 일부러 주문을 안 했습니다.
(혹시나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면, 그때 주문을 하려고요. ㅎㅎ)
혹시나 제가 막스 베버 책을 먼저 읽어도 되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한강 작가님 책을 함께 읽고, 토지를 시작하겠습니다.
1. 막스 베버 책. (~10월 말)
2. 한강 작가님 책. (11월 첫 주)
3. 토지 쭉~ (11월 2 주~)
제 희망인데, 토지를 미루고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좀 더 토지를 잘 즐기기 위한 기초를 쌓기 위함입니다.
딸기님! 의견 부탁 드립니다. ^^!
(약속한 [토지] 시작이 한없이 미뤄지는 것 같아 죄송함도 있거든요,,!)
회원님들, 갑자기 날씨가 더 쌀쌀해졌습니다.
감기 꼭 조심하시고요,,!!
저희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네 일단 책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ㅎ 전 노트북님의 계획 좋습니다. 다만 전 다른 책과 한강님 책을 섞어서 읽겠습니다. 순서는 전 한강님 책을 먼저 보고 남는 시간에 다른책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11월 둘째주부터 토지를 읽는걸로 할까요. ㅎ 다만 스토리 스포가 되지 않도록 한강님 책 후기는 11월 첫째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토지가 미뤄지는건 그만큼 간절함이 생기는 일이라 괜찮습니다. 그럼 토지를 더 잘 보게 되겠죠?^^
이렇게 긴글을 쓰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할만큼 매번 정성스런 후기를 올려주셔서 마치 책 한권을 읽는 느낌을 받아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 정치에 대해 그리 많은 생각을 하고 살진 않아서 깊이있는 얘기는 못할것같아요.
다만 민주주의 라는 것이 우리가 지켜나가야할 것임은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덜 성숙된 우리의 사회적 인식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가끔 미성숙한 하위계층의 인식이 밀어올리는 민주주의가 과연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는것이 맞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정치에서의 순수한 목적은 무얼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정말 순수하게 나라만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순수를 가장한 자신의 이익(당의 이익이 곧 자신의 이익이 되겠죠)이 결국 그들의 목적이지 않나 싶어요. 권력의 맛은 알면 놓을수 없는 마약같은거라 생각하니까요. 그 판에 들어가면 모두 비슷해지는 현상을 보면 그런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치를 생각하면 마음이 모질어지는느낌을 받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등한시 하는것도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라 이또한 비굴한 민주주의의 노예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요즘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진 않습니다.
너무 두서없는 얘기를 늘어놓았네요.
여튼 노트북님 덕분에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되어 좋습니다.
다양한 자극은 더 많은 독서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켜주니까요.
감사합니다. ㅎ
에히리 프롬의 밀도있는 책
'자유로 부터의 도피' 를 완독하시고
책만큼 밀도 있는 후기도 잘 읽었습니다.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내용의 책인것
같습니다.
소설 토지를 읽기 전에 심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는 노트북님의 생각에
저도 공감이 갑니다.
그러기 위해 막스베버의 책을 읽고자 하시는
노트북님을 보고 또 한수 배우고 가네요.
책에 대한 열정과 다양한 각도로 쓰여진
책들을 읽고 자신의 가치관을 견고하게
쌓아가는 듯한 모습에서요.
아들의 한글교육으로 고민하시는 모습에서는
제가 예전 아들 한글교육으로 고민 했던 때도
살짝 떠올랐습니다.
저는 학습지를 선택했었는데,
잘 못된 선택이었음을 아들이 다 커고 나서야
깨달았네요.
자연스럽게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호기심이 생기도록 기다려줘야
했다는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엄마의 조급함이 아들의 호기심을
깍아버렸지요.
아이를 키우는것은 엄마도 초보이기에
시행착오를 할 수 밖에 없지만,
내 아이의 성장에 맞는 교육이 최상인듯
합니다.
지혜로운 노트북님을 보고 자란
아드님은 잘 성장할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