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마음이 설레였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그래서 꼭 읽고 싶었죠.
전 제 방이 없습니다. 제 책상은 마루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가족이 모두 집에 있는 경우 글을 쓴다거나 책을 읽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죠. 딸아이들이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쉬고 싶을까봐 책상에 앉아서 뭘 하는것이 망설여지기도 하구요.
물론 가족들이 모두 나가면 거실은 제 방이 됩니다.
그 책상도 이런 제 마음을 읽은 큰딸이 사준것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물론 제 돈으로 살수도 있겠지만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건 무지 큰 힘이 되거든요. 이 집에서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해 있는 물건이고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할수 있는 물건이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내 방까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도 꾸곤 합니다.
하지만 방을 하나 더 늘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딸 중 한명이라도 출가를 하는것도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방을 갖는 것이 지금은 상상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떠나거나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가능해지는 일이기에 그 어느날을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마치 여행 가기전 기다리는 마음이 더 행복하듯이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 방은 넓은 창가쪽으로 기다란 책상을 놓고 책을 읽고 쓰는 공간, 뜨게를 하고 재봉을 할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나머지 공간은 책장으로 만들어 매일 그 책을 들여다 보며 살고 싶습니다. 또 책을 편히 볼수 있는 안락 의자도 하나 있으면 더 좋겠구요. 전 매일 이런 상상을 합니다. ㅋ
이런 즐거운 상상을 했던터라 이 책의 제목은 제 맘에 쏙 들어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장 훑어보고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예전엔 이 책이 어렵다 생각했었어요. 내공이 많이 부족한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여러 책을 보면서 나름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직 완독을 못했는데 천천히 읽고 싶어서 1,2,3장을 읽고 다시 재독을 하는 중입니다. 다음주에 4,5,6장을 읽고 또 재독을 하려 합니다. 즐기고 싶어서요. ㅎ
여자가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내가 다시 책장을 바라보며 개탄스러워하는 것은 18세기 이전의 여성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돌려볼 수 있는 모델이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여성들이 시를 쓰지 않았는지 묻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우기는 한 건지, 자기만을 위한 방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았는지, 요컨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얼 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들은 분명히 돈이 없었습니다. 트리벨리언 교수에 따르면 그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 방을 떠나기도 전인 열다섯 살이나 열여섯 살 정도에 결혼을 했습니다...
...또 그 이전의 어머니들이 막대한 재산을 모아 대학과 도서관의 초석 아래 기부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 역시 무익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은 돈을 버는 게 불가능했고 둘쨰, 그게 가능했다 하더라도 번 돈을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앆기 때문입니다. 시턴 부인이 자신의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된건 겨우 48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 수백 년 동안은 모든 재산이 남편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시턴 부인과 그녀의 어머니들을 증권거래소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한 몫했을 겁니다....
..왜 시턴 부인은 우리에게 남겨줄 돈이 없었던 걸까, 가난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또한 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나는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 예배당에서 울리던 오르간과 도서관의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긴 문 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 생각했습니다. 잠긴 문 안쪽에 있는 게 어쩌면 어 나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성이 가진 안전과 번영, 도 다른 성이 가진 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했고, 한 작가의 마음에 전통과 전통의 결핍이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했고...
여러분은 혹시 여성에 대한 책이 1년에 얼마나 많이 저술되는지 알고 있나요? 그중 얼마나 많은 책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짐작이 가나요? 여러분은 자신이 전 우주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논의되는 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
여성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남성들을 실제보다 두배로 커 보이게 비추는 아주 기분 좋은 마법을 지닌 거울 역할을 해왔습니다. 아마 그 힘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직도 늪지와 정글인 상태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이 책이 쓰여졌던 1920년대 이전의 영국은 여성의 지위가 형편없었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여성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보조적인 일을 벗어나지 못해서 일을 해도 돈을 많이 벌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그런 일들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결혼식 취재기사작성, 주소 대필, 책 읽어주기, 어린이 영어철자 지도)
이후 21세기에도 여자들은 직장과 육아의 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숙모에게서 유산으로 연금을 물려받으며 그 밥벌이의 의무에서 벗어날수 있었죠.
여성에게도 남성과 더불어 자신만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자립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순수하고 원론적인 페미니즘을 시사하는 글을 쓰면서 지금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옛날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얘기를 부정적으로 얘기하곤 하는데 영국의 실상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토지라는 책에서 봤듯이 서희가 재산을 보유했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라는 한때 대영제국이었던 나라에서 여성이 재산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우리나라 조선시대가 여성에게 그리 불리한 시대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별로 믿음이 없었던 적이 있었어요. 분명 여성이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대접을 못받았던건 맞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속에서의 여성의 모습은 남성들의 픽션안에서의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영웅적이기고 하고 비열하기도 하고 무한의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실제로 여성의 존재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어느 부모에게는 아들에 속한 노예일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접한 문학작품과 현실에서의 여성의 갭을 느끼고 나니 버지니아 울프의 이런 관점이 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페미니즘이 몰아치면서 역으로 남성의 위치가 불안정해지고 더불어 여성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얘기(성적접촉에 있어서 역으로 남성이 더 비난을 받는 일)도 있지만 그건 당분간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여성에게 불리한 부분(육아)가 분명히 있고 또 그동안 픽박받았던 여성의 자리를 찾기위해 어느정도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가며 양성의 자리는 편안하게 자리잡아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제목이 다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제목에서 느끼는 향기가 참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여성에게도 또 물론 남성에게도 나만의 방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ㅎ

여러분은 혹시 여성에 대한 책이 1년에 얼마나 많이 저술되는지 알고 있나요? 그중 얼마나 많은 책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짐작이 가나요? 여러분은 자신이 전 우주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논의되는 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
라는 부분이 참 공감갑니다.
어렸을 적 고전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어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도 '여자는(=나는) 아름다워야 하는구나.' 고 은연중에 계속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당연히(?)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탁월했으며 그 탁월함을 아버지, 남편, 애인을 위해 잘 활용했던 장면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중국소설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인이 등장하는 경우에 항상 머리끝부터 눈,코,입, 어깨 선, 몸매를 하나하나 묘사하는데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저의 외모를 떠올리며 비교하고 좌절(?)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느낀 감정은 분명히 '불편함' 이었는데 그게 불편한 감정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성이 등장하는 순간 여성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으면서 묘사하는 것이 그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을요.
아래 노트북님 독서후기를 보니 '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저도 관념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관념이 도전받고, 무너지고, 새로운 관념이 만들어지면서 세상이 발전하는데요. 지금 세상의 관념(성인지 감수성)을 가졌을 때 이렇게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그 당시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는 지금 시대에서는 누구나 당연히 알 수 있죠. 그래서 관념을 파괴하는 천재들,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새로 정립되는 관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하는 활동가, 각 진영의 운동가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자기만의 방' 이라니.. 제목이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책과 독서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