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이 기다려지는 건 여기 회원님들과 생각을 공유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 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일주일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이 더 알차게 느껴지게 되었구요.
날이 좋아 나들이 갈 일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책에 소홀하게 되는 식이라 마음이 바빠지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즐기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책 읽는 일이 숙제처럼 느끼는것 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니까요. ㅎ
오래도록 한 책(토지)에 매달렸던 탓인지 새로운 소설이 무척 고팠더랬습니다.
제가 책 좋아하는 걸 너무 잘 아는 지인이 선물해 준 이 책이 읽고 싶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구요. ㅜㅜ
한창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대형서점마다 책 사기 위한 줄이 이어지던 그때, 난 그의 소설을 두권 읽고 더 많은 그의 책이 읽고 싶었었죠. 그의 심오한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에 어쩐지 마음을 내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는 이런 어두운 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강이 말하는 슬픔은 읽어보고 싶었어요. 그에게는 끌리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책은 꽤 두꺼운 편이에요. 묵직한 두께를 한 소설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책에 빠져있는 시간이 길수록 저자와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며 그로인해 저자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의 깊이는 슬픔의 깊이를 따라 오지 못하는 걸까요. 깊이는 주로 슬픔에서 읽혀지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슬픔이 빠진 책은 나사가 빠진 글처럼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첫장을 읽는데 예의 한강 특유의 문체를 한껏 느낄수 있는.. 너무 실감나서 속이 울렁거리기 조차하는 그런 동물적인 표현들이 나옵니다. 좀 불편했지만 어쩌면 한강님은 우리의 마음 저 밑바닥에 숨어있던 잔인하고 동물적인 것들을 끄집어 내어준 것 뿐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표현이 너무 맞다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거북스럽지만 그래 그 표현이 맞을지 몰라.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한강님의 언어에 익숙해져야겠다.. 그래야 내 내면에 나도 모르던 감정을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 몰라..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 순간을 전 사랑합니다. 짜릿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제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검은 사슴이라는 말이 어디에 적용이 되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나니 그 정체가 주인공 의선이라고 혼자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장씨일수도 있고 명윤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장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검은 사슴.
800미터 지하 갱도를 드나들던 광부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들여준 이야기입니다. 광부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라 할수 있죠.
깊은 땅속 암반 사이에서 사는 짐슴, 온몸은 검은 털로 뒤덮였고 두 눈은 굶주린 범처럼 형형하며 이빨은 늑대 송곳니처럼 단단한 이 짐승의 몸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것은 이마에 자라난 번쩍이는 뿔이다. 천형처럼 어둠을 짊어진 이 짐승의 평생 소원은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보는 것이어서, 마주치는 사람들한테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묻는데, 사람들은 검은 사슴의 뿔을 자르고 이빨을 뽑은 뒤 길을 막아 따라나오지 못하게 한다...어쩌다 운좋게 암반 사이의 가느다란 틈을 비집고 나와 꿈에도 그리던 하늘을 보게 되면, 햇빛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스스로 끈적끈적한 진홍색 웅덩이로 변해버린다. ..
처음 읽었을 때 이것은 마치 의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내내 의선이 가진 느낌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할때 어느 누구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려 봅니다.
소설은 의선이라는 인물을 찾아가는 명윤과 인영의 이야기를 따라 갑니다.
의선과 명윤(남자후배)과 인영(잡지사) 그리고 의선을 찾기 위해 찾아간 황곡의 괴팍한 탄광 사진 작가 장종욱이 등장합니다.
인영의 아래층 회사에 근무하는 의선은 근무 중 심부름 가던 길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길을 걷다가 길거리에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길거리를 활보하던 의선의 이야기를 인영으로부터 듣고 명윤은 의선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의선이 경찰에 붙잡히고 풀려난 몇일 후 그가 나타난 곳은 인영의 집앞이었습니다. 그를 거두어 인영은 3달을 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화장실에서 인영이 찍은 흑백 바다 사진을 모두 태우는 의선을 인영이 발견한 후 의선은 집을 나갑니다.
그리고 3계절을 명윤은 의선과 함께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떠난 의선이 지금 어디서 무얼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학 때 시를 쓰며 주목받았던 명윤이었지만 졸업후 일자리를 찾지못해 방황하던 중 유학을 가겠다는 뜬금없는 결심을 하고..하지만 그마저도 시들해짐과 동시에 의선이라는 인물을 알게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명윤이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의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명윤에게 의선이 머무는 이유는 명윤에게 미래가 없다는 이유일지 모릅니다. 그에게 앞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때 의선을 만난것입니다. 그가 의선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건 명윤도 모를지 모릅니다.'
명윤의 부모는 우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다른 형제들은 결혼과 함께 집을 떠났고 남은 막내 여동생 명아만이 그가 지킬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아가 20살도 되기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술집에서 서빙을 하던 그를 찾아왔지만 다시 가출해버린 동생 명아는 명윤의 슬픔입니다.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다녔지만 그 자취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가 만난 의선이라는 인물에 매달리게 된 건 의선에게서 명아의 모습이 보여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간지 알수 없는 그녀를 인영은 잊고 싶었지만 명윤의 간청으로 인영의 취재 목적을 빌미로 황곡이라는 곳으로 함께 떠납니다. 그곳에서 탄광 사진작가 장씨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죠.
의선이 열네살때 서울로 올라올때 타고 온 열차가 황곡시 열차라는 말에 꽂혔던 것이죠. 거기에 가면 의선을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장이라는 사람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장에게는 예전에 탄광 사진을 찍을 때 의지했던 임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씨는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 두 아이를 내팽게쳐버린 인물로 나옵니다. 장에게는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무정한 아빠였던거죠.
아마도 그 임씨의 딸이 임의선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선의 불우한 과거가 설명이 됩니다. 어릴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생과 살아가야했던 불우한 과거는 지금의 의선을 불안하고 외로운 인물로 만들어 버린듯합니다.
의선과 명윤 그리고 장이라는 인물 모두 불우한 처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내내 우울 모드입니다. 하나씩 인물들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누구 하나 불행하지 않았던 삶을 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노력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명아와 공범이었던 것이다. 철들면서부터 꾸어왔던 탈출에의 꿈을 여전히 짊어진 채, 어리석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면서도, 명윤은 자신의 젊음을 모래알처럼 소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명윤이 삼각대를 가지러 왔던 날, 찾잔 받침을 만지작거리며 팽팽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의선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불안과 연민을 나는 장에게서 다시 느끼고 있었다.'
'명윤의 말대로 나는 지독히 차가운 인간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의선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까지 와서 찾아다녔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제 괜찮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의 얼굴에서 내가 읽은 것은 환멸이라기 보다는 견고한 외로움이었다.'(장씨에 대한 명윤의 대사)
의선을 파괴해갔던 켜켜이 엉켜버린 그 어둠은 그녀가 살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녀는 결코 그런 세상을 원치 않았을겁니다. 결국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 의선의 삶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한번쯤은 행복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안의 슬픔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사슴을 서술한 문장을 읽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가 점점 소설이 진행되면서 의선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슬펐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와 욕망, 그리고 존재의 불안을 상징하는 환상의 존재로 그려지는 검은 사슴은 의선과 장씨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슬픔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소설을 끝냈습니다.
슬픈 소설을 보고나면 한동안 우울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드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슬픔을 알아야 삶을 더 진하게 느낄수 있고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삶은 다양한 감정의 종합세트입니다. 슬프고 잔인한 일에도 너무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본질을 보려고 합니다.
어디선가 감정 소모라는 말을 처음 듣고 부정적으로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긍정적으로 이 말을 새기려 합니다. 왜냐하면 감정에 매몰되면 본질을 똑바로 직시할수 없을때가 있다는걸 알았거든요. 좀 매몰찬 이야기가 될수도 있겠지만 감정은 감정으로 인정하고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이성적인 눈을 가지는 것이 책을 읽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감정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사람 맞습니다. ㅎ 노력할 뿐이죠.
두꺼운 책이라 2주에 걸쳐 읽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한번에 후기를 써야할것 같았고 더 중요한건 의선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여기에 담으면 스포가 될거같아 그냥 말았습니다. 한강님 책을 다른 분들이 앞으로도 많이 읽으실것 같아서 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딸기님,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
'묵직한 두께를 한 소설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책에 빠져있는 시간이 길수록 저자와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저자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본인만의 취향과 그 이유 안다는 것, 글을 통해 저자에 대해 생각하고 친근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멀고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ㅎ
밑에 다른 분들의 댓글까지 다 읽고 나니, 뭔가 티키타카가 잘 되는 느낌도 받았고, 이 모임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네요 😀
제목이 너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강님의 책은 아직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만약 제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건 모지?'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기회가 있어 글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검은 사슴을 묘사한 글에서 사슴이 평생 소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현실에서 어떤 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북님의 말처럼 왜 사슴이었는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어둠 속에 사는 다른 동물로 비유해도 되지 않았을까.. ㅋ
'사람들은 검은 사슴의 뿔을 자르고 이빨을 뽑은 뒤 길을 막아 따라나오지 못하게 한다'
도움이 필요한데 이기적인 사람들은 되려 그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 만을 취하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하늘을 보게 되면, 햇빛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스스로 끈적끈적한 진홍색 웅덩이로 변해버린다'
'스스로' 라는 말이 죽음으로 세상을 마감한 의선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짠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옳다'라는 책에서 '감정은 모두 옳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책을 읽을 때 오는 감정도 틀린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딸기님처럼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그 감정이 옳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 담으면 스포가 될거같아 그냥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딸기님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