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이번 한 주는 또 왜 이렇게 긴 느낌이 들었던 걸까요,,!
저는 주중에는 거의 제가 아이를 전담해서 케어하는데,
이번 주말은 남편이 토, 일 모두 부재입니다.
이런 주는 제 시간이 많이 없네요.
요즘은 '인생은 장기전이고, 결국 모든 건 체력 싸움이다.' 하는 생각으로 이 기간 몸을 만드는데 집중하다 보니, 이전에 독서에 할애했던 제 시간을 운동에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건 선택인데, 지금 이 시기에는 제게 독서만큼 체력 충전도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정된 시간을 다시 배분했습니다.
이번 18권 역시 쉽게 읽히고 재밌었습니다.
18권에서는 임명빈이 점점 자존감이 떨어지고 열등감에 휩싸이게 되면서 병이 났습니다.
여기서는 임명빈과 이상현이 부모에 비해 보잘것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 같은 감정으로 힘들어했고, 또 양현은 엄마의 핏줄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천하게 느끼며 약간 뿌리에 대한 혐오와 열등감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참 희한하게 누군가는 멋진 부모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또 못한(?) 부모 때문에 열등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부모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고귀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또 누군가는,, 개천에서 용 난듯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같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것으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며, 또 누군가는 자부심의 이유가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답을 알긴 힘들겠지만.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그 당사자의 삶이 얼마나 성취로 이루어졌냐 일 것 같고, 또 두 번째로는 양현의 경우만 봐도 성취로는 못할 게 없었지만, 다 큰 이후 환국의 처 덕희(새언니)의 미움과 괄시가 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개인이 일생동안 이룬 성취와 받은 사랑에 따라 자기애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하지만) 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경우는, 타인의 그런 괴롭힘도 문제가 안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 일지는 모르겠지만요.
해답을 찾기 위한 생각보다는, 그냥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황태수의 귀한 딸 덕희가 양현아가씨를 질투합니다.
저는 사실, 이 집안의 친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엿한 양녀로 자라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양현을 두고 둘이 있을 때면 "양현씨"라고 까지 부르며 거리를 두고, 은근히 환국과 가족에게 오해받도록 모함하는 덕희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질투의 감정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좀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유치한 행동까지 한 느낌이 들었었네요.
하지만 그래도 참 다행인 건, 덕희도 때가 덜 묻고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설자라는 뜻밖의 질이 매우 나쁜 여자로 인해 오히려 덕희와 양현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의외로 아주 작은 사건인, 명희의 집에서 일을 봐주는 홍천댁이 왜 우편물을 핑계로(책에서 쓰여진 것처럼 자기의 도장이나, 남편(차서방)의 도장을 찍어도 될 것을) 명희의 서랍까지 열어서 명희의 도장을 찍었다가 돌려놓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었는지가 의문이었습니다.
무언가 그 대목에서 그 홍천댁 부부가 미심쩍게 느껴졌지만, 일단 그렇게 끝이 났는데, 더 읽게 되면.. 홍천댁에 대해서 다른 사건도 나오게 될지도 궁금하네요,, 이제 막바지를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로운 전개가 가능할진 모르겠지만요.
다시 주된 이야기로 넘어와서, 병든 임명빈(명희의 오빠)이 지리산 소지감이 스님으로 있는 절로 떠나는 장면에서 입니다.
산으로 떠나는 명빈의 병든 몰골을 보면서 명희는 이들 세대의 종언을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감옥에 유폐되었거나, 친일파로 전락되었거나 해외로 탈출했거나 혹은 낙향하여 숨어버렸거나 아니면 칼끝 같은 정세를 관망하며 불안하게 사업체를 붙들고 있거나, 어쨌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만 이들의 세대, 젊었던 한철 의기양양했으며 비분강개하고 3.1 운동의 중추 세력이었던 이들의 세대, 무너지고 산산조각이 난 것을 명희는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것이었다.
개찰구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는 최상길, 동경까지 가서 음악 공부를 하고 왔건만 그도 갈 곳이 없는 사람이다. 보통학교를 나와 어느 부서에 소사로 어렵게 들어가서 천신만고 서기가 된 사람보다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바로 저와 같은 인텔리다.
명희는 상해에서 남천택이 만났다는 이상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임명빈이 그를 아꼈던가. 누이와의 로맨스를 은근히 기대하기까지 했던, 철없이 낭만적이던 문청 시절의 임명빈. 늙고 병든 그의 모습에서, 그의 모습을 통하여 명희는 피폐했을 이상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상해 뒷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이상현, 그들의 세월은 모두 무위한 것이었으며 안타까운 것이었다. 죄책감의 자기모멸... 명희는 떠나는 명빈을 위하여 그런 쌓이고 쌓인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분이었다.
하기는 무위하게 보낸 세월이 임명빈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능했던 것도 어디 임명빈만의 몫이겠는가.
조선의 세월 그 자체가 무위 했으며 무능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는데, 젊은 시절, 3.1 운동의 주역이었던 그들의 세대가 이렇게 처참하게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막을 내린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동시에,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그에 아우르는 모든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 우리는 얼마나 유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전 세계가 역사 속에 발전해 오면서 끊이지 않고 되풀이된다는 세대 갈등 역시, 더 나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보다 못했던 시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 개인이 더 우수해서 그런 비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번 토지를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 시절의 삶이 가슴 아프면서도, 현재의 우리의 삶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계속 듭니다.
숙이의 남동생 몽치(박재수)가 역시 해도사의 예상대로 사업수완도 좋고, 웬만해선 두려움도 없는 사내로 컸습니다. 해서 배움은 짧지만 돈은 제법 번 선주의 눈에 띄어 어장을 관리하며 삶이 좋아졌습니다.
그런 몽치가 5살 된 아들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막을 하는 여자 모화에게 청혼을 합니다.
저는 항상 이런 사랑도 참 응원하게 되고, 무엇보다 그 둘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했습니다.
현실에서도 유독 기가 센 남자들이 또 의외로 기가 이렇게 매우 센 여자를 좋아하는 경우를 봤어서 그런지, 특히 캐릭터들이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조준구가 죽었고, 그 시체를 화장을 할 건지, 장지에 묻을 것인지로 조준구의 아들 조병수와 그의 장손 조남현의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조병수는 아무리 악한 부모여도 부모고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조남현은 할아버지의 악행과 그로 인해 힘들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삶이 싫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화장하고 다시는 찾지 않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할어버지에 대한 일에서 강경하고 냉소적이었던 남현이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대성통곡을 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조준구를 장지에 묻습니다.
저는 고귀한 조병수의 영혼을 높이 샀지만, 마지막의 조병수의 모습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글이,
부모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효'를 강요하는 것은 상당히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도 하나의 인간관계인데, 그 관계가 얼마나 건강하고 상호적이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절대적인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항상 그렇게 배워 왔고,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조병수의 그런 완고함이 멋있고 본받고 싶다기보다는, 참 답답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번 17권 후기에서 말씀드린 '경자유전'에 대해서 제가 실질적으로 느꼈던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경작하는 자가 밭을 소유한다'라는 뜻으로, 농지를 실제로 경작하는, 농업인이나 농업 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는 뜻입니다. (헌법 제121조 경자유전 법칙.)
이전에도 제가 토지 후기에서 아주 짧게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드린 적이 있지만,
경자 유전의 초기 의도는 막대한 자본가들로부터 농민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시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이 법이 오히려 평생 노동에 비해 가난하게 살았던 농민들을 끝까지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게 된 격입니다.
모든 실물 자산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가격이 상승합니다.
농지도 그렇고, 다른 토지, 건물, 주택, 금 모두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농지만이 유독 접근성이 까다롭기 때문에, 심지어 경매를 한다 해도 농지만큼은 농업인 자격 증명을 제출해야 해당 토지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농지는 농민들 사이에서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 농. 공. 상 모든 직업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빈곤층이었던 농업인들이 현재에도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고, 그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그 자산은 평균 인플레도 반영 못하는 금액으로 거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땅에서 농사까지 지어서 식량이 나고, 그것을 팔 수 있다는 이유로 농지의 가치를 높이 여겼다면, 그 가치를 가늠할 때, 오랜 시간 반영될 인플레의 가치에 대해서도 꼭 고려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2~30년 여 년 전 같은 금액으로 누군가는 농지를 사고, 누군가는 공장 용지를 사고, 누군가는 아파트 갭투자를 했다 칩니다. 그럼 결국 장시간 인플레를 맞은 상황 후를 비교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요,,?!
물론 그것은 오로지 자본(돈)에 대한 가치로만 생각을 한 결과이긴 합니다.
공장을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유는 공장을 하면 그렇게 무조건 돈을 번다기보다는, 공장 용지만큼 잘 오르는 땅이 없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겨우 현상 유지만 했다 하더라도, 은퇴할 때 다 정리하고 나면 쏠쏠한 재산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말일 겁니다. (지역의 차를 제외하고 지목과 용도에 따라서 인플레가 달리 반영된다는 것을 반영한다면, 공장 용지나 대지가 농지보다는 토지를 활용함에 있어서 더 우위라는 뜻도 될 터이고요.)
평생 농지를 사서 농사를 짓고 그 노동력으로 (같은 급의 다른 일의) 월급을 받는 대신 모조리 농사에 투자했다 했을 때, 마진은 생각보다 높지 못할 것입니다.
(농사는 실제로 유통망을 자체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밑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익률이 낮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토지의 사회주의자들이, 농민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농사 이외의 상업에 물들지 않게 해야 한다 한 것에 현실적 회의감이 들었었습니다. 아무리 시골 부자들이라 하더라도, 들이는 막대한 노동력에 비하면, 도시의 수입에 비해는 작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하우스 등의 시설비도 요즘은 정말 크고요. 물론 정부 보조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거의 적자이기 때문에 농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보조가 아닐까도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땅을 사서 실제 매년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벌었다 한들,
그냥 같은 금액으로 일명 갭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토지를 사서 인플레를 맞은 차익에 비하면 실로 낮을 확률이 정말 높지요. 거의 대부분은 그 소중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서 번 돈들이 아무리 해도 깔고만 있던 부동산이 인플레를 맞는 것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한탄하기보다는 그때부터라도 인플레를 방어하기 위한 포지션으로 계획을 세워 이동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더 안정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여기서도 저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재정계획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개인이 어떤 일로 인해 더 큰 행복을 느끼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부동산 임장을 중간중간 많이 해왔지만, 지방은 오랫동안 가지 않았습니다.
갭가격이 너무 낮은 도시 위주로 지방 임장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정말 놀랐던 건 수도권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집값이 저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드는 생각은,, 서울에서는 은퇴하시고 나면 집 하나가 든든한 밑천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들은 은퇴 후의 2~30년 동안 인플레까지 고려하면 꽤나 많은 비용이 들 텐데, 그 비용을 따로 저축하거나 투자해 놓지 않았다면.. 집값으로는 택도 없을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게 될까,,?! 하는 생각에 아찔하고, 괜히 누군가 그런 상황에 놓일 것인 안타깝고 걱정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지역의 토지여도 토지의 지목과 용도에 따라 인플레 반영이 다릅니다.
거기에 더하여 또다시 지역에 따라서도 인플레가 반영되는 것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강남, 똑똑한 한채.'라는 말이 투자입장에서 생겨난 것일 겁니다.
저는 강남의 똑똑한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이상하다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처럼 대학 졸업 후 양가에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돈을 쓰면서 자신들이 번 돈만으로 시작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어마어마한 인플레에서 생존을 위해 고민하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저 또한 제 아무리 강남이어도.. 이 정도 올랐으면 이제 한동안 정체나 조정을 받을 거라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제가 얼마나 우리나라 부자들의 수입을 우습게 생각했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현실을 너무 몰랐던 것이지요.
물론 남편도 똑같이 학군 때문에 강남에서 살았지만, 그 당시 강남은 지금 같은 위상은 아니었다 합니다.
(물론 계산을 해보면, 그때의 집 값도 다른 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비쌌던 것 같습니다.)
지금 친구들 중에 가장 성공한 친구들은, 부모님이 그 터전을 안 떠나시고 끝까지 지키며 사신 집들이라고 합니다. 대형 평수들은 재개발을 하고 있는데, 국평을 받으면 2채를 받을 수 있어서, 한 채로 증여세를 내고 한 채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신도시나 외곽에 다른 새 아파트 청약이 되어서 떠나신 분들은 당시에는 잘 된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아쉬운 일이 된 것입니다.
오래도록 지켜서 덕을 보신 분들을 제외하고라도, 왜 강남이 인플레의 반영에서 압도적일 수 있느냐는 것은 생각해 보면 그곳을 원하여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누구냐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농지에서 경자유전 (농민들끼리만 거래할 수 있는 자산)과 돈을 벌었다 하면 가고 싶은 동네(학군, 교통, 인프라 최적지)로 유입되는 자금과 인플레의 차이가 충분히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결과가 모두 미래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농업은 전 세계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것.
그리고 어느 나라나 수도와 국제 도시들은 인플레가 다른 지역보다 유독 커 왔다는 것.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하더라도, 도쿄 중심의 집값은 어떠했었는지?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고려해 보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꼭 인플레 최대 수혜 자산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의 현재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는 그것들을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이런 주장을 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이 그러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그것을 계속 등한시하시는 분들을 보면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등이 생겨서 적어 보았습니다,,)
이미 저보다 인생 선배이신 분들이 대부분이신데, 제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좀 웃기기도 하지만요,,
3~40대에 정말 많이 느껴왔던 저 '인플레'의 문제를 함축한 '경자유전'에 대한 이야기가 토지에서도 나와서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인생은 장기전이고 모든것은 체력싸움이다.' 라고
하신 말씀 무척 공감합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노트북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운동을 챙기고
건강을 챙기셔서 넘 다행입니다.
저는 너무 늦게 깨닫고 요즘에서야 운동도
챙기고 먹는것도 신경씁니다.
그리고 부모자식 관계도 결국 인간관계라는것.
이것도 공감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부모 자식이라고 모든것을 다 해
주는 관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서로 피를 나눈 사이라 더 각별한 애정과 사랑이
보편적으로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나 자식이
있다면 이 관계는 남보다 못할 수 있다고 생각들고,
자식의 '효'나 부모의 도리는 무조건적이지 않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미성년인 자녀에 대한 의무는
제외하고요. 미성년인 자녀는 무조건 부모가
책임을 지고 키워야 하는게 맞고,
성인이 된 이후는 부모자식도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조병수의 이야기는 아직 그부분을 읽지 못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타고난 심성이 착해 그런가? 아님 자신도 언젠가 부모로서 죽음이 닥쳐
올텐데 그때를 생각해서 그랬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농지의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저는 부동산을 농지 공장부지 택지로 분류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노트북님의 글을 보니
농민들이 많은 점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농산물이 많이 중요해질텐데,
국가적으로 많은 지원이 필요해 보이네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이 많은 후기를
남겨주셔서 늘 배우게 됩니다.
오늘도 긴 후기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노트북님^^
방금전 하얼빈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안중근 의사를 이야기였는데 거기에 나오는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토지를 떠올렸는데 노트북님이 임명빈과 이상현에 대한 얘기를 해주셔서 잠시 그 당시 상황에 빠져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ㅎ
조준구 아들 조병수에 대한 얘기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거기를 읽을 당시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했거든요. ㅋ
그런데 지금 노트북님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또 들었어요.
그렇게 자신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아버지를 죽은 후에도 굳이 고집부리며 모시려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답답했지만
아마도 그런 행동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한 DNA가 장착된 조병수로서는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생각했을지 모르죠. 그게 도리라고 말은 했지만요.
사람마다 마음이라는 것이 복잡해서 뭐라 한마디로 그의 행동을 단정짓기는 어려운거 같아요. 이것도 제 생각이죠.
조병수는 정말 효심으로 그런것일수도 있구요. ㅎ
경자유전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농지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결국 우리나라는 땅으로, 집으로 돈을 불리는 것이 재산을 불리는 주가 되다 보니 땅에 대한 민감성 또한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집 한채가 노후에 가진 자산의 전부이기가 쉬운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집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는 것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집을 어디에 살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너무 중요한 얘기가 되었죠.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방과 서울의 집값이 너무 차이가 나고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이고 보면 그것에 무덤덤해지기는 쉽지 않겠죠.
노트북님이 집 이사에 관해서도 무척 신경을 쓰셨던거 같고 또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시려는 것 같은데
전 그런 자세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후에 가장 큰 효자는 돈이라고 하죠.
물론 돈이 다가 아닌것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큰 위안이 되는 것도 맞죠.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 다르니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말할수는 없지만 뭐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열성을 보이는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나누면서 이런 얘기도 할수 있다는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오늘 얘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노트북님^^